[김상훈 기자의 That's IT]3D복제는 불법일까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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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말로만 듣던 3차원(3D) 프린터를 직접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3D 프린터는 컴퓨터 그래픽 프로그램으로 디자인한 물체를 실제 모형으로 만들어주는 장치입니다. 원리는 단순합니다. 지도의 등고선을 그리듯 빠르게 굳는 합성수지를 바닥에서부터 쌓아갑니다. 잉크를 인쇄하는 대신 합성수지를 인쇄하고, 그 위에 다시 합성수지를 인쇄하면 두께가 늘어나니까요.

이 3D 프린터는 원래 매우 비싸 대중과는 거리가 좀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미국에서는 대당 약 2000달러(약 226만 원) 수준까지 값이 내려가 일반인 사이에서도 인기라고 합니다. 직접 3D 프린터를 조립해 만들면 값은 500달러 정도로 내려갑니다. 50만 원이 조금 넘는 돈으로 집에서 온갖 플라스틱 제품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죠.

3D 프린터로 만들 수 있는 건 단순히 장난감 수준이 아닙니다. 이미 3D 프린터로 무인 비행기를 만든 사례도 나왔고, 기업에서는 신제품 모형을 3D 프린터로 제작합니다.

기업이나 전문가만의 얘기가 아닙니다.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없는 일반인도 쉽게 쓸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전문가용 컴퓨터 설계 프로그램을 만들던 오토데스크라는 회사는 최근 자동으로 3D 디자인을 해주는 ‘123D’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들고 다니는 휴대전화의 카메라로 관심 있는 물체를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하면 이를 123D 프로그램이 스스로 분석해서 3D 컴퓨터 그래픽으로 재구성해주는 프로그램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사진만 찍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3D로 다시 만들 수 있게 된 겁니다.

꿈 같은 일이 현실이 됐지만 논란도 생겼습니다. 50만 원짜리 3D 프린터와 무료로 배포되는 123D의 만남이 빚은 역효과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예쁜 디자인의 화분과 식기, 휴대전화 케이스, 필통 등을 파는 가게에 들어간다고 생각해보죠. 지금까지 이런 곳에서 우리는 “과연 밥그릇 한 개에 1만 원을 내야 하고, 휴대전화 케이스 하나 사는 데 3만 원을 써야 할 가치가 있는 걸까?”라며 고민했습니다. 디자인이 뛰어나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면 돈을 냈고, 아무리 디자인이 좋아도 쓸모와 가격이 우선이라면 꾹 참았습니다.

이젠 달라졌습니다. 휴대전화를 꺼내 앞뒤, 위아래, 왼쪽 오른쪽을 촬영한 뒤 집에 돌아와서 똑같은 밥그릇과 휴대전화 케이스를 3D 프린터로 찍어내면 그만이니까요. 디자인 권리 침해처럼 보이지만 처벌할 근거가 없습니다. 사진을 찍는 건 불법이 아니고, 찍은 사진을 참고해 물건을 만드는 것도 불법이 아닙니다. 기존 법률은 3D 프린터와 123D를 고려하지 않았던 겁니다.

약 10년 전 MP3플레이어가 급속도로 보급되고, 음악이 ‘냅스터’나 ‘소리바다’를 통해 무제한으로 불법 유통되면서 음악 산업은 크게 위축됐습니다. 이후 영화와 드라마, 책 등이 비슷한 길을 걸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문제는 디지털이었습니다. 디지털로 변환될 수 있는 것만이 기술 혁신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젠 다를지 모릅니다. 3D 프린터와 123D 프로그램은 우리 주위의 사물까지 0과 1의 디지털 형태로 복제해 재생산해 내기 시작했습니다. 기술 발전에 따라 비용은 점점 줄어들고, 복제품의 품질은 점점 높아지겠죠. ‘복제의 시대’가 코앞에 온 느낌입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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