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제주도에서 이어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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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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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가을, 강두형. 그림 제공 포털아트
제주의 가을, 강두형. 그림 제공 포털아트
‘나는 떼어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배에서 내리자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이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곯았다//술에 취한 섬, 물을 베고 잔다/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저 섬에서 한 달만 뜬눈으로 살자/저 섬에서 한 달만/그리움이 없어질 때까지.’

이생진 시인의 ‘그리운 바다 성산포’를 읽으면 언제 어디에서건 망망한 바다가 펼쳐집니다. 아름다운 바다가 아니고 고독하고 뼈저린 바다, 슬프고 가슴 저려 눈두덩이 욱신거리게 만드는 바다가 살아납니다. 어쩌란 말이냐, 어쩌란 말이냐, 날더러 어쩌란 말이냐, 하염없이 가슴을 두들기게 만드는 시인의 절창을 들으며 소주잔을 기울인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겁니다. 20대의 허물을 벗고 30대가 되어도 따라붙는 바다, 30대를 보내고 40대가 되어도 시인의 바다는 끈덕지고 집요하고 환장하게 따라붙습니다.

“이엿사나 이어도 사나 이엿사나 이어도 사나.”

이어도는 제주 아낙네들에게 전해 내려온 전설 속의 이상향입니다. 바다에 나간 남편이나 자식이 풍랑을 만나 돌아오지 않으면 제주 아낙네들은 눈물을 삼키며 그들이 이어도에서 복락을 누리고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들도 죽으면 또한 그곳으로 가서 가족들과 만나 영원히 행복하게 살 거라고 믿었습니다. 고려가 원나라의 지배를 받던 때부터 전해 내려온 전설이니 바다에 가족을 앗기고 살아간 제주 아낙네들의 한에 대해서는 중언부언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그래서 제주 삼다(三多) 중 한 가지를 형성한 여성들은 자신들의 한을 속 깊은 울림의 민요로 만들어 불렀습니다.

제주는 바람에 등 떠밀려 끝없이 걷게 만드는 섬입니다. 올레를 걸어본 사람은 알 것입니다. 제주가 태풍의 길목이라 바람이 사방팔방에서 불어와 육신과 마음을 무시로 흔들어댄다는 것. 바람에 뺨 맞고 멱살 잡히고 머리카락 헝클어지며 올레를 걷다 보면 허세 부리는 마음의 종말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도 그게 좋아서 제주를 찾는 사람, 제주를 찾는 마음이 많습니다. 마음 자락 다 내놓고, 설움 자락 다 내놓고, 고독 자락 다 내놓고 바람처럼 심신이 한껏 가벼워질 때의 희열을 어떻게 말로 형용할 수 있을까요.

제주도가 세계 7대 경관에 선정되었다고 세상이 떠들썩합니다. 유네스코 3관왕에 이어 세계 7대 경관에 선정된 곳은 오직 제주도뿐이라는 보도도 자주 눈에 띕니다. 하지만 제주도를 찾게 될 관광객이 엄청 늘어나고 경제적 이익도 함께 상승할 거라는 기대가 곧 ‘장밋빛 제주’를 의미하지는 않을 거라는 걱정도 많습니다. 얻는 게 있는 만큼 잃는 것도 있을 터이니 제주의 아픔과 제주의 속살을 사랑했던 사람들은 묵묵히 바람의 제주, 한의 제주, 유배의 제주를 떠올리며 관광제주의 그늘에서 사라져갈 것들을 걱정합니다. 돈으로 맞바꿀 수 없는 것,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 제주에는 있기 때문입니다.

제주는 바람과 함께 걸어야 하는 섬, 바람처럼 걷지 않으면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 섬입니다. 올레를 걸어 보면 그것이 곧 바람의 길이고 인생의 길이고 영혼의 길이라는 걸 절로 알게 됩니다. 가는 길에 혹여 해녀가 보이거든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마시고 바다를 다시 보세요. 그러면 ‘60평생 두고두고 사랑해도 다 사랑하지 못하고/또 기다리는 사람’처럼 우리 모두가 섬이라는 걸 깨치게 됩니다. 이 세상에 섬 아닌 존재가 어디 있을까요.

박상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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