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박원순의 강점과 약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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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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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논설실장
황호택 논설실장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과거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충성도 높은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정당 일체감(party identification)’ 조사 결과를 분석하면 정당에 귀속(歸屬)의식을 갖고 있는 유권자는 20∼25% 정도다. 기성 정당들이 극단과 배제의 정치로 ‘그들만의 리그’를 벌이는 데 대해 유권자들의 혐오가 커지면서 무당파(無黨派)층이 확대되고 있다.

無黨派업고 민주당 손잡은 모순

안철수 바람의 키워드는 “한나라당은 희망이 없고 민주당은 대안(代案)이 아니다”는 것이다. 박원순 후보가 논리적 일관성을 보여주려면 민주당과도 손을 끊고 제3세력의 무소속으로 출마했어야 한다. 박 후보는 무당파 안풍(安風)을 업으면서도 민주당과 손잡고 10번과 2번 표를 함께 챙기겠다는 전략이다.

박 후보는 참여연대 아름다운재단 희망제작소 같은 시민단체 활동을 하는 동안 언론의 검증보다는 지원을 받았다. 그에게 검증 서치라이트를 비추자 나경원 후보에 비해 훨씬 많은 양의 자료가 쏟아져 나와 언론이 기계적 균형을 고민해야 할 정도다. 그가 검증의 분출에 힘들어한다고 주변에서 전하지만 치열한 검증은 스스로 선택한 운명이다.

아름다운재단 홈페이지는 ‘나눔을 실천하는 시민이 주인이 되어 이끌어 가는 비영리 재단법인’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순수 시민이 아닌 10개 대기업이 아름다운재단에 2001∼2010년 148억 원을 기부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박 후보는 “재벌로부터 받은 돈으로 기금을 만들어 전기세 수도세를 못 내는 수만 가구를 지원했고 싱글맘을 위해 희망가게도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염라대왕 돈이라도 끌어다가 좋은 일을 했으면 그만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후원금을 선의의 목적에 썼느냐도 중요하지만 과연 정당한 후원이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박 후보는 시민운동의 대부(代父) 같은 존재다. 박 후보는 참여연대를 그만두고 아름다운재단을 시작해 참여연대와 무관하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형식논리다. 많은 사람이 아름다운재단을 참여연대의 ‘관계사’처럼 인식한다. 참여연대가 재벌개혁 운동을 하고 아름다운가게가 재벌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은 것은 민주당 박영선 의원의 비판처럼 한 손에 채찍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후원금을 수령하는 것과 같다.

나는 그와 함께 청암(포스코 설립자 박태준의 아호)상 심사위원을 한 적이 있다. 회의를 마치고 광화문으로 오는 동승 택시 안에서 그에게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이 멀쩡한 미국산 쇠고기를 놓고 광우병 촛불시위를 벌인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참여연대에서 손을 뗐다”며 침묵했다. 박 후보는 ‘희망을 심다’(2009년)라는 책에서 2008년 서울 도심에서 3개월 동안 벌어졌던 촛불시위에 대한 견해를 이렇게 밝혔다. “촛불집회도 조금은 유연하게 방향을 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민주노총 지지하는 사람과 참여연대 지지하는 사람이 똑같으면 안 된다고 봅니다.”

시민운동 代父의 정계진출 논란

나는 박 후보가 좀 더 공개적으로 참여연대 후배들을 나무랐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정론직필(正論直筆)의 지식인이라기보다는 이쪽의 인심도 잃기 싫고 저쪽의 호감도 사려는 정치인 기질을 보여준다. 천안함 폭침이 ‘북한의 소행’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정부가 북을 자극해 장병이 수장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토를 다는 것도 중도우파를 먹고 좌파를 달래려는 전략이다.

박 후보는 장점도 많은 사람이다. 그는 인권과 민주화운동에 헌신하다 일찍이 세상을 뜬 고 조영래 변호사를 사사(師事)했다. 둘 다 영남 출신에 경기고를 졸업했고 인권 변호사를 했다. 두 변호사는 글을 잘 써 민주화 운동기에 동아일보에 좋은 글을 많이 게재했다. 박 변호사 같은 왕성한 사회적 활동과 꾸준한 학습은 여간한 부지런함과 집념이 아니고서는 해내기 어렵다. 그는 “일하다 과로사하는 게 꿈”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시민단체 활동으로 바쁘게 뛰어다니면서도 저서를 무려 40여 권이나 펴냈다. 경남 창녕군 시골 중학교를 나와 재수해 경기고에 들어갈 때 석 달 동안 독서실에서 양말을 한 번도 벗지 않았다는 독종이다.

그는 인터뷰집에서 “뭘 하나 시작하면 끝장을 내야 할 만큼 목적의식 성취의식이 강하다”고 자신을 말했다. 이것은 장점이기도 하지만 목적의식에 매몰돼 절차적 정당성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나는 박원순의 최대 약점이 일관성 결여(缺如)라고 생각한다. 시민운동과 정치가 뒤섞이다 보면 시민운동은 순수성을 잃고 정치의 하부조직으로 전락하기 쉽다. 박 후보는 불모지에서 시민운동을 개척한 공이 크지만 정치에 뛰어듦으로써 시민운동과 정치를 가르는 칸막이를 무너뜨렸다.

황호택 논설실장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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