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김형수]콘텐츠 강국으로 가는 길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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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수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김형수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암탉이 울면 집안이 흥한다. 암탉이 마당을 나오면 콘텐츠 산업이 흥한다. 마당 안에만 머물던 한국 애니메이션이 마당 밖으로 나왔다. 개봉한 지 한 달을 넘기지도 않았는데 100만 관객을 넘긴 ‘마당을 나온 암탉’ 얘기다. 2000년대 들어 애니메이션 영화로 만든 ‘마리 이야기’, ‘원더풀 데이즈’, ‘오세암’ 등은 흥행에 실패했다. 그런데 ‘마당을 나온 암탉’의 흥행 성적표는 새로운 기록을 보여준다. 축하할 일이다. 콘텐츠 사업 수행에서 중요한 아이디어, 예산, 시간을 최적화한 성공 사례를 보여준다. 마케팅, 배급 등 사업 능력과 더불어 장편 애니메이션이 갖춰야 할 기본 요건인 작품의 시퀀스 운영 능력도 확보하고 있다. 마당을 나온 암탉 한 마리가 한국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희망이 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애니메이션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예술이다. 촬영 카메라, 촬영의 대상이 되는 사물이나 캐릭터, 그리고 영상을 밝히는 광원으로서의 빛. 이 세 가지 요소를 가장 창의적으로 운용하는 영상예술이 애니메이션이다. 애니메이션 세계에선 캐릭터나 사물들이 관계 맺는 영상이 기하학적이다. 사건과 공간, 카메라의 움직임으로 묘사되는 캐릭터의 동작에 이르기까지 사람이 인식할 수 있는 모든 영역에서 애니메이션의 잠재력이 발휘된다.

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는 ‘내러티브의 구조적 분석’이라는 책에서 시퀀스를 이렇게 정의한다. “시퀀스는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논리적으로 연결된 핵심적인 장면들을 함께 묶어 놓은 것이다. 시퀀스의 시작은 앞에 연결된 장면이 없을 때이며, 시퀀스의 끝은 더 이상 뒤에 연결된 장면이 없을 때이다.”

‘마당을 나온 암탉’ 한국 애니 새 희망

‘마당을 나온 암탉’의 시퀀스는 어린이들을 1시간 30분을 집중시킬 정도로 효과적이다. 사실 시퀀스를 구성하는 모든 그림을 한 땀 한 땀 만들어내야 하는 애니메이션으로 이런 능력을 보여준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다. ‘마당을 나온 암탉’에선 캐릭터나 사물들이 관계 맺는 기하학적인 영상과 사운드, 사건과 공간, 카메라의 움직임으로 표현되는 동작을 애니메이션의 잠재력을 발휘해 새로운 방식으로 드러내는 힘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애니메이션의 다차원적·기하학적 영상과 조율해 이야기를 풀어내는 비주얼 스토리텔링이 약한 편이다. 영상과 복합적으로 어우러져야 할 스토리 라인을 오디오적인 방식으로만 명확하게 전달받은 아쉬움이 있다.

애니메이션 영화 ‘마당을 나온 암탉’은 그 자체가 영화 속 캐릭터인 암탉 ‘잎싹’이 품어보려 한 알과 같다. 마당 안 양계장에 갇혀 알 낳는 기계로만 있던 잎싹의 꿈은 자신의 알을 품어보는 것이었다. 영화 속 잎싹은 결국 자신의 알을 품어보진 못했지만 청둥오리 초록을 용맹하게 길러내 세상 밖으로 보낸다. 한 편의 애니메이션 영화가 어렵게 알에서 깨어 세상 밖으로 나왔다. 이로 인해 힘차게 세계로 뻗어갈 수 있는 한국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장이 마련되는 계기가 되면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일이 그리 쉬워만 보이진 않는다. 문화강국을 외치는 한국의 콘텐츠산업 정책은 문화기술이라는 이름의 양계장 만드는 일에 막대한 예산을 쏟고 있다.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회장은 “SM콘서트의 성공은 정부가 주도하는 문화기술 덕”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사실 그것은 틀린 말이다. 문화기술(CT)은 정보기술(IT), 바이오기술(BT), 나노기술(NT)처럼 객관화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어서 늘 논란이 된다. 창조산업에 대응하는 도구적 용어에 불과한 문화기술이라는 말에 너무 집착하지 말았으면 한다. 다양한 알을 품어내고 길러내는 비전을 세우는 게 중요하고 시급하다. 따지고 보면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회장, 심재명 명필름 대표야말로 마당을 나온 암탉, 의지와 꿈을 지닌 암탉이 아닐까. 오랫동안 알을 품고 그 알들을 낳은 이들이다. 문화기술을 익혀서 큰일을 낸 것이 아니다.

지속가능한 ‘한류 원형’ 만들어야

혁신적으로 업그레이드된 지원과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아이디어를 사업화하고, 문화예술 표현형식을 개발하는 과정에 중장기적 지원을 해야 한다. 지속 가능한 한류문화를 위해 문화예술 표현의 ‘원형’을 만들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케이팝(K-pop·한국대중가요)이나 드라마는 수면 위에 떠있는 귀한 물질들이다. 이 물질을 다음 세대에서도 활용하도록 가다듬은 영상, 공연, 전시 등 한류문화의 원형을 만들자. 세계적인 문화상품인 캐나다 ‘태양의 서커스’의 성공 요인은 기술개발이 아니라 다양한 예술 콘텐츠를 담아내는 문화예술 표현의 원형이다. 서커스에서 도구적으로 운용되던 인간의 신체를 문화예술로 표현하는 관점과 능력을 갖추었기에 오늘의 영광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 콘텐츠 강국이 되려면 이 원형이 필요하다.

김형수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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