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음식이야기]<54>장어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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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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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에게 좋다! 여자에겐 더 좋다!

장어는 여름이 제철이다. 속담에 3월 거문도 조기는 7월 칠산 장어와도 안 바꾼다고 했다. 봄철 조기를 예찬한 말이지만 여름철 장어도 못지않게 맛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일본에서는 장어가 복날 먹는 음식이다. 장어를 먹으면 여름에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믿는다. 일본 고전인 만요슈(萬葉集)에도 보이니 여름 보양식으로 먹은 역사가 꽤 깊다.

우리에게도 여름에 구이나 국으로 먹는 장어는 어떤 음식과도 견줄 수 없는 영양식이며 더위에 잃은 입맛을 되찾아주는 식욕 촉진제다. 숙주에 고사리 넣고 끓인 장어국을 먹고 나면 다른 것은 맹물에 조약돌 삶은 국 맛이 난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다.

장어는 고려 때부터 왕실에서 즐겨 먹었던 요리다. 지금은 전북 고창의 장어가 유명하지만 옛날에는 임진강 장어가 크게 이름을 떨쳤다. 고려시대에는 임진강에서 다양한 물고기가 풍부하게 잡혔는데 이 중에서도 여름 장어는 송도 왕궁으로 보내졌다고 한다.

임진강 장어는 근대까지만 해도 계속 명성을 유지했다. 1931년 10월 31일자 동아일보를 보면 경성의 어시장에서 팔리는 임진강 장어는 조수 간만의 차가 큰 곳에서 잡혀 진미(眞味)와 풍미(風味)를 모두 갖췄다고 하여 일류 요릿집으로 팔려 나갈 정도로 이름값이 높았다고 한다. 지금 옛날의 명성은 사라졌지만 아직도 임진강 하류의 파주와 강화도 일대에 장어를 파는 집이 많은 이유다.

지금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 중에서 밀물과 썰물의 차가 커서 힘이 좋고 맛있는 장어가 많이 잡혀 이름을 날리는 지역을 들자면 전북 고창이다. 다산 정약용이 탐진어가(耽津漁歌)라는 시에서 봄이 되면 물 좋은 장어가 많아서 어선이 푸른 물결 헤치고 나가 장어를 잡는다고 했으니 다산이 귀양살이를 하던 순조 무렵에도 칠산 앞바다인 고창, 영광 일대에서는 장어가 많이 잡혔던 모양이다.

장어는 남자에게 특히 좋은 음식으로 알고 있지만 옛 문헌에는 오히려 여자에게 좋다고 나온다. 선조 때 송도사람 차식(車軾)이 조선 제2대 임금인 정종의 무덤인 후릉(厚陵)의 관리를 맡았다. 평소 초라했던 능을 정성껏 돌봤더니 정종이 꿈에 나타났다. 정결한 음식을 제물로 바친 뜻이 가상하다면서 “네 어미가 지금 대하병(帶下病)을 앓는다니 내가 좋은 약을 주겠다”고 했다. 꿈에서 깨니 마침 매 한 마리가 날아가다 큰 생선 한 마리를 하늘에서 떨어뜨렸다. 힘이 펄펄 넘치는 장어로 길이가 한 자나 되었다. 꿈속 일이 생각나 장어를 집으로 가져와 어머니께 드렸더니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송도기이(松都記異)라는 책에 나온다. 송나라 때 태평광기(太平廣記)에는 죽어가는 사람도 살리는 보양식으로 묘사해 놓았다. 전염병에 걸린 여인에게 장어를 장기간 먹였더니 병이 깨끗하게 낫고 이후에는 어떤 병에도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이나 중국 이야기의 특징은 장어를 먹으니 병이 낫는데 주인공은 모두 여자라는 사실이다. 옛날 의학서를 보면 하나같이 장어는 전염병과 부인병에 좋다고 했다. 홍만선이 쓴 산림경제(山林經濟)에는 장어를 먹으면 종기가 낫고 부인병이 치료된다는 내용이 보인다. 동의보감에도 장어는 오장이 상한 것을 보완하며 또 여러 가지 균을 죽이는데 특히 여자의 질병에 좋다고 나온다.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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