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이 한줄]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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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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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은 사람’되기 놀이

“당신을 생각할 때마다, 난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져.”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1997년) 중에서


지금까지 몇 번쯤 이 비슷한 말을 했을까.

토이 3집 ‘Gift’ 수록곡 노랫말처럼 “그대 앞에 언젠가 자랑스런 모습으로 서 있기 위해, 내 모자란 부분 조금씩 고치면서” 다시 시작한다.

하지만 쳇바퀴. 말한 횟수만큼 성실히 실천했다면 아마 이미 오래전에 거의 완벽한 남자가 됐을 거다. 사랑하는 시간 속에서 약속과 다짐은 대개 부질없다.

영화 말미. 남자(잭 니컬슨)는 베스트셀러 작가답게 두고두고 후배 연인들의 입에 오를 찡한 고백을 건넨다. 성격파탄 중년 외톨이의 끈덕진 대시에 곤란해하던 여자(헬렌 헌트)는 감성과 이성이 절묘하게 버무려진 고백에 스르르 마음을 연다. 누군들.

따뜻한 대화와 눈빛을 주고받은 뒤 갓 구운 빵을 사려고 함께 나선 새벽길. 여자가 문득 말한다.

“역시…, 안 되겠어요.”

보도블록 금을 밟지 못하는 남자의 결벽을 확인한 거다. 누군들.

그 괴팍한 습관 하나만으로도 남자는 누군가와 함께 머물며 삶을 꾸려가기 힘든 종자다. 쓸모는 있을지 모르나 인간답지 않은 인간. 근무시간 외에는 연락은커녕 잠깐 떠올리기도 싫은 종류의 인간. 누군가와 함께한다면 이 남자도 그 누군가도 결국 불행해진다. 고백의 달콤함은 잠깐. 성질머리가 낳는 진절머리는, 영원하다.

영화에서 여자는 남자의 설득에 다시 그럭저럭 넘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의혹이 가시지 않은 눈빛을 한 채 일단 집으로 함께 돌아간다. 나란히 걷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담은 마지막 장면. 남자는 자기도 모르는 새 슬쩍 보도블록 금을 밟는다. 조금이나마 더 나아질 희망의 암시에 관객은 흐뭇하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런 따사로운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 희박하다.

만나고 헤어진다. 도돌이표 위를 걷듯. 이별의 풍경과 대사는 어쩜 그렇게도 대개 비슷비슷할까. 진폭은 줄어들고 파장은 짧아진다.

조금 더 나아져봤자 어차피 사람은 바뀌지 않는데. 결정적인 순간 파탄의 성격이 다시 근본을 드러낼 텐데. 그렇게 되면 이 사람도 언젠가 들었던 그 말을 남기고 휙 뒤돌아 떠날 텐데.

포기하면 편하다.

안 선생님(‘슬램 덩크’)께서는 “포기하면 거기서 게임 끝”이라고 늘 말씀하셨지만, 현실에서는 포기해도 끝나는 게 별로 없다. 난 원래 그런 놈이니까, 하고 지내다 보니 어느새 정말 그런 놈이 돼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정기적 심야 라면과 불균형 운동으로 인해 팔 근육이 붙은 만큼 솟아오른 뱃살. 기이한 체형만큼 속내도 알 수 없는 놈이 된다.

그런데 정말 뭔가 포기하긴 한 걸까. 주말에 아무 가망 없는 약속이라도 잡히면 그래도 수요일쯤부터 라면을 끊고 턱걸이를 한 번이라도 더 해본다.

그나마 더 심하게, 급하게 나빠지지 않는 것. 역시 사랑을 온전히 놓아버리지, 포기하지 않아서다. 비록 그것이 길에서 우연히 마주칠 날에 대한 천하 바보 멍청이의 막연한 대비일 뿐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좋아져봤자 근본이 바뀌지 않더라도. 종이인형을 정성껏 잘라내고 난 가장자리 종이 위에 다시 인형을 그리는 것과 같은 헛짓일 뿐이라 하더라도.

사랑을 포기하면, 쳇바퀴가 멈추면, 거기서 정말 끝일 거다.

krag06@gmail.com

krag 동아일보 기자. 조각가 음악가 의사를 꿈꾸다가 뜬금없이 건축을 공부한 뒤 글 쓰며 밥 벌어 살고 있다. 삶은 홀로 무자맥질. 취미는 가사노동. 음악과 영화 덕에 그래도 가끔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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