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새샘 기자의 고양이끼고 드라마]요즘 한일 드라마 속 엄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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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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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스럽고… 악하고… 비정한…
그들은 왜 ‘나쁜 엄마’가 됐나

MBC ‘내 마음이 들리니’에서 복수를 위해 아들을 이용하는 태현숙(이혜영)은 ‘나쁜 엄마’의 전형을 보여준다(위). 일본 드라마 ‘이름을 잃어버린 여신’은 유치원생 아이를 둔 엄마들의 진학 경쟁을 그렸다(아래). MBC 제공·후지TV 홈페이지 촬영
MBC ‘내 마음이 들리니’에서 복수를 위해 아들을 이용하는 태현숙(이혜영)은 ‘나쁜 엄마’의 전형을 보여준다(위). 일본 드라마 ‘이름을 잃어버린 여신’은 유치원생 아이를 둔 엄마들의 진학 경쟁을 그렸다(아래). MBC 제공·후지TV 홈페이지 촬영
요즘 일본 후지TV는 드라마 ‘이름을 잃어버린 여신’을 방송 중이다. 일본에서는 분기마다 사회문제를 슬쩍 건드리는 드라마들이 등장하는데 이 드라마도 딱 그렇다. 유치원생 아이를 둔 엄마들이 사립 초등학교 진학 경쟁에 뛰어들며 겪는 이야기다.

주인공 유코는 직장을 관두고 전업 주부가 된 후 자신과 교육관이 다른 마마토모(엄마친구·아이를 통해 친구가 된 엄마들) 그룹에 들어가며 갈등을 겪는다. 제목처럼 자기 이름을 잃어버리고 ‘누구네 엄마’라고 불리기 시작한 엄마들은 자식에게 자신의 불안과 기대를 그대로 투영한다. 누군가는 허영심을, 어떤 이는 외로움과 공허함을, 또 다른 이는 남편의 학대로 인한 공포를 아이에게 쏟아 붓는다. 등장인물 중 유일하게 직장을 다니는 사와다 리카코는 말한다. “부모가 자식에게 기대하면 자식은 어떻게든 그 기대를 느낄 수밖에 없어.”

드라마에 나오는 엄마 앞에 요즘처럼 다양한 수식어가 붙었던 적이 없다. 드라마 속 엄마들, 독하고 나쁘고 불안하고 안쓰럽기까지 하다. 엄마들의 교육열과 헌신을 따질 때 둘째가라면 서러울 한일 양국의 공통된 현상이다. 드디어 사람들은 ‘위대하고 헌신적인 엄마’의 신화에서 깨어나 엄마 품을 떠날 마음을 먹게 된 걸까?

지난해 일본에서 방송된 ‘마더’에는 아이를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리는 엄마가 등장했다. 이를 목격한 주인공 스즈하라 나오(마쓰유키 야스코)는 유기당한 아이를 유괴해 아이의 엄마가 되기로 결심한다. 드라마는 이 둘의 여정을 통해 혈연을 바탕으로 한 모성만이 진정한 모성인지,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치는 모성이란 현실 앞에서 무기력한 허상이 아닌지 묻는다.

최근 한국 드라마에도 나쁜 엄마 열풍이 거세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사사건건 자식을 방해하고(MBC ‘욕망의 불꽃’), 자식을 꼭두각시처럼 조종한 끝에 결국 자살로 몰아넣으며(SBS ‘웃어요 엄마’), 죽어가는 자식을 그대로 방치하는 엄마(MBC ‘로열패밀리’)가 줄줄이 등장했다.

현재 방영 중인 MBC ‘내 마음이 들리니’에서도 갈등의 근원은 주인공 차동주(김재원)의 엄마 태현숙(이혜영)이다. 태현숙은 아버지의 기업을 빼앗은 남편에게 복수하려고 아들을 내세운다. 청각장애를 숨겨야 하는 아들의 고통보다는 자신의 복수를 성공시키는 것이 우선이다.

‘웃어요 엄마’의 조복희(이미숙)는 사실 한국 드라마에 자주 등장했던 ‘억척 엄마’의 2011년 버전이다. 자식의 성공을 위해 모든 걸 바친다는 점이 그렇다. 태현숙도 아들의 성공을 바라며 계획을 꾸미고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상대적 약자였던 과거의 억척엄마들과 달리 21세기형 억척엄마들은 돈과 권력을 휘두르며 자식을 포함한 주변인들에게 민폐를 끼친다. 드라마는 이런 엄마들을 아름답게 치장하는 대신 ‘불완전한 인간’으로서의 엄마, 그리고 절름발이 엄마들이 불러오는 파국에 집중한다.

이제 한일 양국의 드라마는 엄마에게 투정부리고 떼쓰는 대신 엄마도 실수투성이 인간이라는 점을 인정하기 시작한 듯하다. 다만 ‘엄마들은 왜 그럴까’라는 질문에 충실히 답하는 ‘일드’와 달리 ‘한드’ 속 엄마들은 밑도 끝도 없는 집착과 악행으로 이해할 마음조차 들지 않게 한다. 불완전한 엄마들이 나쁜 것이 아니다. ‘왜’를 설명해주지 않는 불완전한 서사가 나쁘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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