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후의 성장엔진을 찾아라]<7>핀란드, 일하는 엄마가 나라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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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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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4명중 3명은 직장인… “국가가 육아 거들어줘 든든”

《‘73.9%’, ‘4만3000달러’. 이 두 숫자는 무엇을 의미할까. 첫 번째는 핀란드 엄마들의 근로 비율이다. 18세 미만의 자녀를 둔 핀란드 엄마들은 10명 중 7.4명꼴로 직장에 다니고 있다. 두 번째는 핀란드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다. 한국의 두 배가 넘는 액수다. 한반도 1.5배 땅에 인구는 고작 530만 명.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지는 채 100년이 안 됐고, 가진 자원의 대부분은 나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유럽의 이 작은 나라는 4만 달러를 훌쩍 넘는 1인당 GDP를 자랑한다. 핀란드 사람들은 그 주요한 이유 중 하나로 핀란드 여성들의 활발한 사회활동을 꼽는다. 맞벌이 가정의 소득이 외벌이 가정보다 높듯, 남자와 여자가 함께 일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국가 GDP 또한 높다는 것이다. 핀란드 여성, 특히 엄마들이 이처럼 활발히 사회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은 국가가 여성들의 결혼과 출산, 양육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적은 인구에 10여 년 전부터 빠른 고령화 현상을 겪고 있는 핀란드는 ‘아이’와 ‘여성인력’ 확보에 나라의 미래를 걸고 더 많은 출산과 여성의 사회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한 전략들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17일 핀란드 헬싱키 시내의 한 사설 데이케어센터에서 어린이들이 선생님이 읽어주는 동화책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질 높은 보육을 싼값에 제공하는 데이케어센터는 핀란드 직장맘들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헬싱키=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서 20여 분을 차로 달려 도착한 에스푸 시(市). 크림같이 새하얀 눈에 덮인 2층 주택들이 몰려있는 이곳은 핀란드 중산층이 사는 전형적인 위성도시다.

지난해 12월 14일 오후 5시. 약속대로 주소를 찾아가 문을 두드리자 인형처럼 예쁜 딸 엘리사(5)를 안은 주부 오티 씨(36)가 반갑게 기자를 맞았다. 그 뒤로 문 열리는 소리에 뛰어나온 오티 씨의 아들 산테리(8)가 수줍게 웃으며 꾸벅 인사를 했다.

○ 핀란드, “일도 아이도 모두 지킨다”

오티 씨는 두 남매의 엄마이자, 직장인이다.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과 국제학을 전공한 그는 핀란드 유력 경제지에서 기자로 일하다 지금은 주핀란드 미국 상공회의소의 공보관으로 일하고 있다. 오티 씨는 한창 기자로 뛰던 2002년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일과 결혼을 병행하는 게 고민이 되지 않았냐고 물었다. “아니요. 오히려 너무너무 결혼하고 싶었는걸요. 여기서는 결혼하면 장점이 많으니까요. 양육수당과 휴가를 누릴 수 있고, 질 좋은 데이케어(day care·육아) 서비스를 받을 수 있죠. 핀란드에서는 양육문제로 결혼을 고민하는 여성은 거의 없어요.”

오티 씨가 설명하는 핀란드의 육아 지원책은 이랬다. 먼저 핀란드 여성들은 아이를 낳은 후 3개월의 출산휴가를 쓸 수 있다. 이 기간 기업은 그들이 일할 때와 똑같은 금액의 월급을 지급한다. 그리고도 아이를 직접 돌보길 원하는 엄마들은 추가로 최장 3년의 육아휴직(모성휴가)을 할 수 있는데, 이는 ‘아이가 태어나서 세 살이 될 때까지는 한 사람이 키우는 것이 정서 발달에 좋다’는 핀란드 의학계의 분석을 반영한 제도란 설명이었다.

육아휴직 동안 정부는 양육비를 지원한다. 오티 씨는 “매달 500유로(약 74만 원)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핀란드의 모든 기업은 육아휴직을 마치고 돌아온 엄마를 휴직 전과 동등한 직급에 배치해야 할 법적 의무를 갖는다”며 “이 때문에 실직이나 승진차별 등에 대한 우려는 없다”고 덧붙였다.

○ 아빠가 쉬어야 엄마가 산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핀란드의 육아휴직은 엄마뿐 아니라 아빠가 누려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아빠가 쓰는 육아휴직은 부성휴가라 부른다. 실제 오티 씨의 남편 세미 씨도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 각각 두 달간 육아휴직을 했다. 세미 씨는 “부성휴가는 아내와 아이, 직장의 여성 동료들을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며 “부성휴가를 쓰지 않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페이지를 놓치는 실수를 범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핀란드에서는 90% 이상의 아빠들이 1, 2개월의 육아휴직을 쓴다. 그러나 최근 핀란드 사회에서는 남성들이 육아휴직을 너무 짧게 사용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아르토 사토넨 핀란드 국회 고용평등위원회 의장은 “엄마들의 육아휴직 사용 기간이 아빠들보다 절대적으로 길어 여성들의 커리어가 손해를 보는 경향이 있다”며 “요즘 의회에서는 엄마 6개월, 아빠 6개월, 부모 중 한 명이 6개월, 이렇게 총 18개월의 육아휴직을 반드시 쓰도록 하는 법안이 논의되고 있다”고 전했다.

○ 든든한 지원군, 데이케어센터

이처럼 핀란드 정부는 엄마들에게 최대 3년의 육아휴직을 할 수 있는 법적 권리를 보장한다. 그러나 실제로 이를 꽉 채워 쓰는 엄마들은 많지 않다. 굳이 휴직을 하지 않아도 일과 양육을 병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데이케어센터’ 덕분이다.

핀란드의 데이케어센터는 우리로 치자면 유아원이나 유치원, 어린이집에 해당한다. 취학(7세) 전 아동은 누구나 데이케어센터에 다닐 수 있는데, 헬싱키 내에만 이런 데이케어센터가 수백 개 있다. 데이케어센터는 사립도 있고 공립도 있다. 하지만 공통점은 어떤 형태이든 간에 아동 1인당 보육료가 월 254유로를 넘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17일 헬싱키 시내 사립 데이케어센터인 잉글리시 몬테소리 스쿨에서 만난 파이비 쿠사 원장은 “한 아이에게 들어가는 비용은 월 800유로에 육박하지만 정부와 시가 절반 이상을 보조하기 때문에 실제 부모가 내는 돈은 약 250유로에 그친다”고 말했다. 이마저도 만약 부모 중 한 명만 일하거나 양쪽 다 직업이 없을 때는 일부, 혹은 전액이 무료라는 설명이었다.

이날 둘러본 데이케어센터는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되고 있었다. 쿠사 원장은 “학부모들은 자신이 편한 시간에 아이를 데리고 와 맡길 수 있다”며 “일부 시립센터는 야간근무 직업을 가진 부모를 위해 24시간 운영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곳에서는 총 7명의 선생님이 42명의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는데, 놀이와 교육은 물론이고 아침, 점심식사 및 간식, 낮잠까지 모두 책임졌다.

데이케어센터의 교육은 한국식 ‘공부’가 아니었지만 매우 즐겁고 건강한 분위기에서 이뤄졌다. 아이들은 친구들과 그룹을 지어 놀고, 공원으로 뛰어나가 눈밭을 뒹굴고, 돌아와서 낮잠을 자다가 다시 선생님이 읽어주는 동화책에 귀를 기울였다. 센터에서 만난 한 아이의 엄마는 “산수나 글쓰기는 나중에도 할 수 있지만 사회의 규칙을 익히고 ‘그냥 노는 것(just playing)’은 크고 나선 할 수 없다”며 “이런 교육이 제일 좋다”고 말했다.

오티 씨도 이런 데이케어센터 덕분에 두 아이를 키우면서도 자신의 일을 계속할 수 있었다. 물론 핀란드 국민들은 이 같은 복지프로그램을 위해 소득의 약 35%를 세금으로 낸다. 하지만 오티 씨는 “나는 행복한 납세자”라고 했다. “전 가족도 사랑하고 일도 사랑해요. 그리고 핀란드 정부는 제가 이 모두를 누릴 수 있게 해주죠. 이런 정부를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기꺼이 낼 수 있지 않겠어요?”(웃음)

에스푸·헬싱키=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정계의 ‘우먼파워’… ‘性域’없다▼

할로넨 대통령(왼쪽), 렌 전 국방장관(오른쪽)
할로넨 대통령(왼쪽), 렌 전 국방장관(오른쪽)
핀란드는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10년 성 격차 지수’에서 세계 115개 국가 중 아이슬란드, 노르웨이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세계에서 3번째로 남녀가 평등한 나라란 뜻으로, 104위로 꼴찌 수준에 머물렀던 한국과 큰 차이다.

실제 핀란드 여성들에게 ‘성역(性域)’이란 없다. 특히 정치 부문의 우먼파워가 눈부시다. 핀란드에서는 대통령과 총리, 국회의장은 물론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국방장관 자리에까지 여성이 오른 전력이 있다. 현재 핀란드 대통령인 타르야 할로넨은 여성이다. 할로넨 대통령은 2000년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연임에 성공하며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국정을 책임지고 있다. 9년간 핀란드 의회를 이끈 리타 우오수카이넨 전 국회의장도 여성이다. 1990년에는 여성인 엘리사베스 렌이 국방장관 자리에 올라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핀란드 의회 관계자는 “핀란드 정계에서는 남녀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고 능력에 따라 일을 맡기는 오랜 전통이 있다”며 “현재 전체 20명의 핀란드 장관 중 절반 이상인 12명이 여성”이라고 전했다. 이는 의회도 예외가 아니어서, 현재 핀란드 의원 200명 중 절반에 가까운 84명이 여성이다.

헬싱키=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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