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새별 새꿈]<4>‘모차르트’로 관객 사로잡은 뮤지컬배우 박 은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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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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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떴다고요? 아직 레슨 받는 배우예요”

뮤지컬 배우 박은태는 예고에서 레슨을 하고, 그 돈으로 자신이 레슨을 받는다고 했다. 악착같이 연습을하는 이유는? 그의 표현대로 ‘포스가 넘치는’ 배우가 되기 위해서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뮤지컬 배우 박은태는 예고에서 레슨을 하고, 그 돈으로 자신이 레슨을 받는다고 했다. 악착같이 연습을하는 이유는? 그의 표현대로 ‘포스가 넘치는’ 배우가 되기 위해서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지난해 1월. 기회는 갑자기 찾아왔다. 뮤지컬 ‘모차르트!’의 타이틀 롤에 캐스팅됐던 가수 조성모가 부상을 당해 출연이 어렵게 됐다. ‘한 번만 주인공으로 섰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커버(특정 배역을 맡은 인물이 무대에 오르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연습하는 배우)로 나섰던 뮤지컬 배우 박은태 씨(30)는 무려 7번이나 무대에 섰다. 생애 첫 주연. 국내에서 가장 크다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이었다. 첫 주연이었지만 그는 ‘물 만난 고기’였다. 안정적이고 호소력 짙은 음색이 관객을 사로잡았다. 극장을 꿰뚫을 정도의 샤우팅 창법의 고음은 전율마저 느껴진다는 평을 받았다. 팬들은 ‘은차르트’란 애칭을 붙여줬다.

“운(運)도 실력이라는 말을 믿어요. 운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준비가 돼 있는 사람만이 잡을 수 있잖아요.”

운은 운을 낳았다. ‘모차르트!’의 공연을 본 관계자로부터 창작 뮤지컬 ‘피맛골 연가’의 주인공 ‘김생’ 제의가 왔다. 9월 다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서출 출신 선비로 사대부 여인과의 애절한 사랑을 펼치는 김생을 연기했다. ‘모차르트!’로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의 신인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몇 달 새 단숨에 뮤지컬계의 기대주로 떠오른 것.

하지만 그는 덤덤했다. “솔직히 특별한 느낌은 없어요. 지난해 감회라…. 많은 일이 있었고, 작품 되게 많이 했네 정도죠. 하하.”

사실 생활은 별로 바뀐 게 없다. 성악, 발레, 재즈, 연기 레슨을 돌아가며 받으며 연습에 매진하는 ‘다람쥐 쳇바퀴’ 생활도 그대로다. 주변에서는 “떴다”고 부추기지만 그의 체감 정도는 달랐다.

“어느 정도 주연이 됐다고 생각해서 생활이 확 필 줄 알았는데 절대 그렇지 않아요. 하하. 작품을 쉬지 않고 계속하면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저는 그렇게 다작을 하는 게 부담스럽거든요.”

그 말은 사실이다. 대형 뮤지컬은 보통 트리플 캐스팅을 하고, 전체 40여 회 공연하는데 그가 설 수 있는 무대는 10∼12회. 2∼3개월의 연습 기간을 감안하면 한 해 세 작품을 해도 총 30여 회 무대에 서는 셈이다. “회당 개런티가 높지 않아서 연봉이 일반 봉급생활자 수준이에요. 예고에 나가 강의를 해 레슨비를 받고, 이 돈으로 제가 받는 레슨비를 충당하고 있어요.”

그가 뮤지컬 배우 수업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은 학교에서 본격적인 뮤지컬 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기 때문. 한양대 경영학과 출신인 그는 ‘마냥 노래가 좋고, 무대에 서고 싶어서’ 대학 2학년 때 강변가요제에 출전했다가 동상을 받았다. 4학년 때 2006년 뮤지컬 ‘라이온킹’의 앙상블 오디션에 발탁돼 뮤지컬계에 입문했다. 그때까지 본 뮤지컬 공연은 2, 3편에 불과했다. “학생 땐 뮤지컬 한 편 볼 돈으로 영화 10편을 보는 게 낫다고 생각할 정도였다”며 웃었다.

경영학도에서 배우로 변신하는 데 가족의 반대는 없었을까. “부모님께서는 ‘그냥 저러다 말겠지’하는 심정으로 허락해 주셨다는데 결국 아직까지 하고 있는 거죠. 시장에서 야채 장사를 하시는데, 제 포스터를 벽에 붙여 놓으시고 주변에 자랑하실 정도로 응원해 주세요.”

최근 뮤지컬 시장은 아이돌이 주연을 속속 맡고 있다. 아이돌의 두꺼운 팬 층에 기댄 마케팅 효과를 노리는 것. 전문 뮤지컬 배우들의 입지는 그만큼 좁아지고, 이들이 느끼는 상실감도 크다. 그룹 동방신기 출신의 김준수 씨(예명 시아준수)와 ‘모차르트!’를 함께한 박 씨의 생각은 어떨까.

“웃기는 얘기겠지만 사실 저 동방신기 팬이었거든요. 준수 씨를 가까이서 보니 신기했죠. 사실 ‘모차르트!’ 하면 준수 씨만 떠올리시는데 크게 서운하지는 않아요. 이미 스타가 돼서 뮤지컬로 넘어오신 분들하고 경쟁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도 그는 이런 ‘스타 마케팅’이 불가피한 측면은 있지만 바람직하지는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가 본 해외 뮤지컬 시장은 달랐기 때문이다. “지난해 독일 뮤지컬 스타 우베 크뢰거의 단독 공연에 초청돼 유럽 시장을 본 적이 있어요. 배우의 퀄리티뿐만 아니라 무대 변환 등 기술적인 부분까지 아주 뛰어났죠. 관객들은 매진 사례를 이어가고, 제작사는 더 좋은 공연으로 돌아오고. 이런 분위기가 무척 부러웠어요.”

그는 5월 ‘모차르트!’의 재공연에 나서고, 첫 연극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새해 바람은 소박했다. “연기 연습을 많이 할 거예요. 연극 출연도 그 때문이죠. (제 연기의) 바닥이 곧 드러나겠지만 두렵지는 않아요. 연말쯤에는 ‘노래 좀 하던 박은태가 연기도 제법 늘었네’라는 소리를 듣는 게 소망입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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