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스마트시티를 가다]<3>싱가포르, 도시국가 한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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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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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서 車 멈춰서면… ‘STARS’ 자동신고 10분만에 견인

《 쌍용건설 싱가포르 지사에서 근무하는 한이화 씨(28·여)는 지난해 12월 고속도로에서 특이한 경험을 했다. 친구와 함께 운전하던 중 1차로에서 차가 갑자기 멈춰서는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추월차로인 데다 마침 휴대전화도 없어 차에서 나와 급하게 중앙분리대로 몸을 피했다. 그런데 불과 10분 뒤 육상교통청(LTA) 소속 픽업트럭이 출동해 차량을 안전한 곳으로 견인해 갔다. 신고도 하지 않았는데 정부기관이 알아서 짧은 시간 안에 적절한 조치를 취한 것이다. 한 씨는 “한국이라면 보험회사도 아니고 공공기관 차량이 이렇게 신속히 출동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놀라워했다. 》
○거미줄처럼 연결된 첨단 교통망

싱가포르 육상교통청(LTA)의 지능형 교통망 시스템. 700여 개의 폐쇄회로를 통해 싱가포르 전체 교통망을 관리하는 이 시스템은 컴퓨터가 차량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인지해 대응한다. 사진 제공 LTA
싱가포르 육상교통청(LTA)의 지능형 교통망 시스템. 700여 개의 폐쇄회로를 통해 싱가포르 전체 교통망을 관리하는 이 시스템은 컴퓨터가 차량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인지해 대응한다. 사진 제공 LTA
싱가포르가 이처럼 신속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비결은 싱가포르 정부가 운영하는 지능형 교통망 시스템인 ‘STARS(Singapore Urban Transport Solution)’ 덕분이다. 700여 개에 이르는 폐쇄회로(CC)TV와 연결돼 싱가포르 전체 교통망을 관리하는 STARS는 컴퓨터가 차량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인지해 상황에 맞게 대응하는 기능을 갖췄다. 예컨대 한 씨 사례처럼 갑자기 고속도로 한가운데 차량이 멈춰 교통 흐름을 방해하는 모습이 CCTV에 찍히는 순간 컴퓨터가 이를 인지하고 즉각 비상경고를 내리는 식이다.

싱가포르가 STARS를 확대 구축하는 데 적극 나서는 것은 경제 발전을 위해 정부가 정책적으로 인구를 늘리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사람이 늘어나다 보니 교통 인프라가 추가로 더 필요하고 이를 좀 더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정보기술(IT)도 절실해진 것. 싱가포르 인구는 2005년 427만 명에서 지난해 500만 명으로 5년 만에 17%나 늘었다. 싱가포르 정부는 인구를 최대 650만 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교통 인프라 구축에 다걸기(올인)하는 싱가포르의 도심은 요즘 온통 공사판이다. 지난해 12월 21일 찾은 LTA 정문 앞도 한국의 쌍용건설이 새로 짓고 있는 지하철 공사로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쌍용건설 싱가포르 지사 관계자는 “싱가포르 정부는 글로벌 경제위기 때도 400억 달러를 투입해 고속도로와 지하철 공사를 대규모로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LTA 스탠리 웡 공보관은 “이처럼 늘어나는 교통망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IT를 최대한 활용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STARS는 좁은 국토에 늘어나는 인구를 감당하기 위한 자구책인 셈이다.

싱가포르는 서울과 비슷한 면적(701㎢)의 좁은 땅에서 차량대수가 2005년 75만5000대에서 지난해 93만6311대로 크게 증가했지만 정부의 교통 서비스는 최상을 유지하고 있다.

○세계 최초로 도입한 ERP 업그레이드

싱가포르가 1998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도입한 전자식 도로통행료(ERP) 시스템. 교통 혼잡을 막기위해 도심 진입 시 차 안에 비치된 전자태그(RFID)를 통해 자동으로 요금이 부과된다. 사진 제공 LTA
싱가포르가 1998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도입한 전자식 도로통행료(ERP) 시스템. 교통 혼잡을 막기위해 도심 진입 시 차 안에 비치된 전자태그(RFID)를 통해 자동으로 요금이 부과된다. 사진 제공 LTA
지난해 12월 21일 오후 6시 50분 싱가포르 부기스역 근처. 기자가 탄 택시 주변으로 시끄러운 경적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퇴근시간대 교통체증으로 차들이 길게 늘어선 가운데 차량 한 대가 앞차가 빠져 공간이 생겼음에도 천천히 움직이는 게 보였다. 수십 m 앞 도로에 서 있는 전자식 도로통행료(ERP) 기둥을 최대한 늦게 통과하려는 속셈이었다. ERP는 교통 혼잡을 막기 위해 도심 진입 시 차 안에 설치된 전자태그(RFID)로 요금을 부과하는 시스템이다.

한 구간을 통과하는 데 혼잡통행료(최대 1750원)를 가장 많이 내야 하는 시간이 오후 7시여서 10분만 더 시간을 끌어 보려는 것. 택시운전사는 “요즘 도로가 막히면서 ERP 구간이 많아지고 통행료도 부쩍 올랐다”고 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이미 1998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ERP 제도를 도입하고 차량 내 전자태그 설치를 의무화했다. 통행료는 물론이고 주차비까지 결제가 가능한데, 도심의 교통체증이 심해질수록 요율을 높이고 ERP 구간을 더 많이 설치해 차량 증가를 억제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이르면 2016년 차량 내 텔레매틱스 시스템을 이용한 새로운 ERP 시스템을 선보일 계획이다. 교통시스템 서버가 개별 차량과 통신하면서 실시간으로 위치를 파악해 요금 부과를 더 정밀하게 하도록 유도하겠다는 것. 웡 공보관은 “현재는 하루 종일 도심도로를 다닌 운전자나 잠깐 이용한 사람 모두 같은 통행료를 내고 있다”면서 “현재 개발 중인 새로운 무선기술을 ERP에 적용하면 앞으로 개별 운전자가 어느 곳을 얼마나 이동했는지에 따라 통행료를 다르게 부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똑똑해지는 교통 정보

싱가포르가 세계적으로 자랑하는 ‘교통량 예측시스템(TPT)’도 STARS의 한 부분이다. 이 시스템은 기존에 수집한 통행량 정보와 실시간 교통량을 토대로 컴퓨터가 한 시간 뒤 도로 상황을 예측해 준다. 운전자들이 밀릴 만한 곳을 피해 우회도로를 이용하거나 아예 버스나 지하철을 타도록 유도할 수 있어 교통체증을 완화하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 특히 교통정보를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로 손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한 것도 눈길을 끈다.

실제로 이날 웡 공보관은 스마트폰으로 ‘My transport.SG’라는 모바일 사이트에 접속해 실시간 도로교통 상황을 보여 줬다. 이 사이트는 LTA에서 제작한 것인데 버스 및 지하철, 택시 운행은 물론이고 주차장 정보까지 총 12가지에 이르는 교통정보를 한번에 확인할 수 있다. 각종 교통정보를 민간기업들이 넘겨받아 애플리케이션으로 서비스하는 경우 시민들이 일일이 앱을 내려받아야 하지만 싱가포르는 정부가 통합 서비스를 해 편리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원자력과 태양광 발전 등으로 에너지원을 다각화하는 한편 이들 전력망을 효율적으로 통합 관리할 수 있는 ‘스마트그리드’ 개발에도 나서고 있다. 22일 만난 에너지청(EMA) 관계자는 국가 단위의 스마트그리드 시행에 앞서 2009년부터 ‘마린 퍼레이드’와 ‘웨스트코스트’의 주거지구 내 400가구를 대상으로 시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각 가정집에 실시간 전력사용량을 확인할 수 있는 ‘스마트미터’를 정부가 무료로 설치해 주는 것으로, 이를 통해 연간 전력사용량을 10%가량 절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 전염병 돌 땐 전자칠판으로 원격수업 ▼
사람 전신크기 디스플레이… 실제 같은 화상회의 가능


싱가포르 정보통신개발청(IDA) 체험센터(iExperience Center)에 전시된 ‘화상회의 시스템’. 한국의 초고속 인터넷보다 10배가량 빠른 싱가포르의 ‘차세대 통신망(NGN)’ 덕분에 화상회의나 화상 교육 시스템 개발에 속도가 붙고 있다. 사진 제공 IDA
싱가포르 정보통신개발청(IDA) 체험센터(iExperience Center)에 전시된 ‘화상회의 시스템’. 한국의 초고속 인터넷보다 10배가량 빠른 싱가포르의 ‘차세대 통신망(NGN)’ 덕분에 화상회의나 화상 교육 시스템 개발에 속도가 붙고 있다. 사진 제공 IDA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파동을 계기로 구축된 시스템입니다.” 지난해 12월 22일 싱가포르 정보통신개발청(IDA) 체험센터. 실제 교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84인치짜리 전자칠판과 교단을 사이에 두고 IDA 관계자가 이렇게 말했다. 어린 학생들이 전염병에 걸리는 것을 막기 위해 집에서도 화상으로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한 게 싱가포르 원격교육 시스템의 효시가 됐다고 설명한다.

싱가포르 정부는 2007년부터 크레센트 여자중학교에서 이 시스템을 시범적용하면서 꾸준히 새로운 버전으로 업데이트하고 있다. IDA 관계자는 전자칠판에 적은 내용과 교사용 PC에서 불러온 각종 동영상 및 사진자료를 학생들의 개인 단말기에 그대로 띄우는 장면을 시연했다. 또 메신저로 교사와 학생들이 서로 통신하는 기능도 보여줬다. 특히 스마트폰 보급률이 40%를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인 나라답게 학생들의 출결상황과 과목별 시험성적 등을 학부모들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한 것도 눈길을 끌었다.

원격교육 시스템 앞에는 화상회의를 위한 ‘전신 디스플레이’가 설치돼 있었다. 보통 얼굴이나 상반신만 담는 일반 화상회의 시스템과는 달리 IDA가 개발하는 것은 실제 사람과 똑같은 크기의 영상을 담아 마치 실제 회의장에 둘러선 것 같은 시각 효과를 줬다.

이런 화상교육이나 화상회의가 가능하려면 대용량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전송할 수 있는 네트워크 인프라부터 갖춰야 한다. 이와 관련해 싱가포르는 2015년까지 정보통신 기술을 산업계는 물론이고 일반 가정에까지 폭넓게 확산시키겠다는 구상인 ‘디지털 퓨처 포 에브리원’ 전략에 따라 대대적인 통신망 구축에 나선 상태다.

IDA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보다 10배가량 빠른 초당 1GB(기가바이트) 속도의 차세대 통신망(NGN·Next Generation Network)을 지난해 말까지 전체 가정의 60%에 구축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2012년 중반까지 NGN을 100% 보급할 계획이다. 싱가포르는 스마트폰 도입을 계기로 통신수요가 크게 늘어나고 있는 점을 감안해 장기적으로 망 속도를 현재의 최대 10배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무엇보다 싱가포르 정부는 NGN 가설비용을 세금으로 충당하는 등 IT를 국민의 일상생활에 깊이 뿌리내리도록 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기자가 이번에 방문한 IDA 체험센터가 싱가포르 도심에서도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진 에스플러네이드 환승역에 자리 잡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싱가포르=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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