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한 해를 시작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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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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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고 산신기-박종덕. 그림제공
다자고 산신기-박종덕. 그림제공
옛날, 충북 단양군 죽령고개는 도적떼가 들끓어 많은 양민이 고통을 받던 곳이었습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출몰하는 도적 때문에 관가에서도 골치를 앓았지만 죽령 일대의 깊고 험한 산세 때문에 도무지 손을 쓸 방도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때 한 할머니가 관가에 찾아와 자신이 도적떼를 소탕하게 해주겠다는 제안을 했습니다. 할머니 스스로 도적떼의 소굴로 들어가 관군 공격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할머니가 제안한 전략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내가 소굴에 들어가 ‘덜자고덜자고’를 외치면 도적들이 아직 깨어 있는 것이고 ‘다자고다자고’를 외치면 다 자는 것이니 그때 동굴 입구를 막고 도적을 소탕하시게.”

도적떼의 소굴로 들어간 할머니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두 아들을 찾으러 왔다며 연방 ‘다자고야, 덜자고야’를 부르고 돌아다녔습니다. 아들을 잃고 실성한 노파인 줄 알고 도적떼가 방심한 사이 할머니는 동굴 입구에 나가 매복한 관군에게 “덜자고야, 덜자고야!” 하고 외쳐댔습니다. 그러다가 깊은 밤이 되어 도적떼가 모두 잠에 빠졌을 때 할머니는 다시 동굴 입구로 나가 “다자고야, 다자고야!” 하고 외쳐댔습니다. 할머니의 기지로 관군은 오랫동안 양민을 괴롭히던 도적떼를 일망타진했습니다.

충북 단양군 대강면 용부원리에 죽령 산신당이 있습니다. 일명 ‘다자고할머니 산신당’이라고 부릅니다. 조선 중기 관군이 도적떼를 소탕할 때 한 노인이 공을 세우고 전사한 일을 기리어 조정에서 사당을 세우고 부락민이 제사를 지내던 곳입니다. 처음에는 나라에서 제사를 지내다가 인조 원년에 단양 영춘 풍기의 고을 군수가 신당을 짓고 매년 3월과 9월 부정이 없는 날 제사를 지냈습니다. 다자고할머니 산신제는 현재까지 이어져 해마다 봄가을에 군수와 마을주민이 참석해 안녕과 평안을 비는 제사를 올립니다.

다자고할머니는 호랑이가 아니라 사람이 산신령이 된 특이한 경우입니다. 노파의 살신성인하는 마음과 이에 감사하는 마음이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이제는 일상적인 믿음의 일부로 자리 잡았습니다. 지켜주는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이 뿌리 내려 공동체적 삶의 토양을 비옥하게 만든 것입니다. 호랑이가 아니라 마을 할머니가 산신령으로 자리 잡은 배경에서 전통사회의 훈훈한 인정과 신뢰가 느껴집니다.

다자고할머니의 살신성인은 세상을 지탱하는 근원적인 희생정신입니다. 그리고 이에 감사하는 마음과 믿음은 공동체적 삶의 토양입니다. 누군가 나를 지켜주고 도와준다는 믿음은 사람에게 깊은 안정감을 줍니다. 그런 자기 암시가 긍정적인 에너지를 조성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로 확장되고 심화됩니다.

내가 하는 일이 다 잘될 거라는 긍정적인 에너지는 좋은 결과를 양산합니다.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에너지는 절망적이고 체념적인 에너지를 불러 의욕을 상실하고 자기 불만의 늪에 빠지게 합니다. 누군가 나를 지켜줄 거라는 믿음,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 그것이 삶에 대한 긍정적인 에너지의 원천입니다. 새해 아침, 다자고할머니의 이야기에서 공동체적 사랑과 감사와 믿음의 씨앗을 발견합니다.

박상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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