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석동빈 기자의 DRIVEN]신형 엑센트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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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달라질 수가“ 중형 뺨치는 디자인-성능-힘
찬바람 불던 소형차 시장 ‘부활 시동’

슈퍼비젼 클러스터(위) 후방카메라 기능이 포함된 DMB 내비게이션
슈퍼비젼 클러스터(위) 후방카메라 기능이 포함된 DMB 내비게이션
한국에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소형차가 외면을 받아왔다. 유럽이나 일본에서는 소형차가 엔트리카의 역할을 하는 동시에 실용적인 이동수단으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국토가 좁아 장거리 이동이 별로 없거나 도시화가 많이 진행돼 주차공간이 협소한 지역에서는 소형차가 판매 1위를 차지하면서 전체 자동차 판매의 3분의 1 이상을 점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국내에선 오히려 중형차가 그 자리를 꿰차고 있다.

자동차로 신분이나 능력을 구분하는 분위기 때문에 주로 혼자서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젊은 싱글들도 패밀리카인 중형차를 선택하는 비율이 높아서다. 게다가 자동차회사들도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높은 중형차와 준대형차의 마케팅에 집중을 하면서 소형차는 디자인, 성능, 편의장치 측면에서도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런데 현대자동차가 지난달 내놓은 신형 ‘엑센트’는 중형차 수준의 편의장치를 선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동력성능과 디자인, 승차감 등이 크게 개선돼 찬바람이 불던 소형차시장에 생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보인다. 시승한 차종은 1.6GDi TOP모델에 차체자세제어장치(VDC)와 DMB내비게이션, 후방디스플레이 룸미러가 들어간 1701만 원짜리다. 선루프만 빠진 풀옵션이다.

○ 디자인 ‘업그레이드’

구형 엑센트는 현대차에서 준중형차 이상을 더 많이 팔기 위해 일부러 디자인을 어설프게 한 것이 아니냐는 소비자들의 불평이 나올 정도로 반응이 좋지 않았다. 같은 차체와 엔진을 쓰는 기아자동차의 신형 프라이드가 훨씬 많이 팔린 것만 봐도 바로 앞 세대의 엑센트는 분명히 국내 소비자들의 디자인 감성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신형 엑센트는 다르다. 역동적인 보디라인으로 강렬한 이미지를 주면서 부드러움도 함께 표현했다. 구형보다 바퀴 사이의 거리가 70mm 넓어지고 차체 높이는 15mm 낮아져 스포티한 느낌을 주는 부분도 소비자들로부터 박수를 받고 있다. 한마디로 값싸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내도 마찬가지다. 성의 없고 간단하기만 했던 기존 소형차와 달리 공조장치나 계기반, 대시보드 등에 공을 들인 흔적이 보인다. 하지만 현대차는 이것을 정말 어렵게 표현했다.

“현대차의 디자인 조형미학으로 자리잡은 ‘플루이딕 스컬프쳐(Fluidic Sculpture)’를 바탕으로, 바람에 날리는 실크의 형상을 모티브로 하는 ‘슬릭 온 다이내믹(Sleek On Dynamic)’ 이란 콘셉트에 따라 디자인됐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해독하기 힘든 영어와 철학적인 분위기의 단어를 집어넣어 멋져 보이고 싶은 것은 알겠는데 너무 지나치면 오히려 우스꽝스럽다는 점도 알았으면 한다.

○ 뛰어난 엔진과 변속기

140마력을 내는 1.6L급 가솔린 직접분사 엔진이 들어가서 ‘힘없는 소형차’라는 놀림에서 벗어났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하는 시간을 직접 측정한 결과 11.0초가 나왔다. 늘어난 출력과 가벼운 차체를 감안하면 기대에는 미치지 않지만 급경에서 빌빌거려 중형차 운전자들로부터 눈총을 받는 설움에서는 해방될 것 같다.

정지했다가 출발할 때는 생각보다 가속력이 나오지 않지만 속도가 시속 30km 이상으로 높아지면 힘이 살아나 답답하지 않게 운전할 수가 있다. 초반에 가속페달의 반응성을 의도적으로 낮춰 연료소비효율(연비)을 높이려는 의도로 보인다. 직분사엔진 특유의 소음도 적고, 회전도 비교적 매끄러운 편이다. 엔진룸이나 실내에서 울리는 공명음도 발견되지 않았다. 최고속도는 시속 200km 부근까지 올라가서 높아진 출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기존 1.6L 소형차로는 도저히 바라볼 수 없었던 속도영역이다.

국산 소형차에 처음 적용된 6단 자동변속기도 변속충격이 적을 뿐만 아니라 적절한 변속시점에 스마트하게 기어를 움직여줘서 엔진과 좋은 궁합을 보였다. 특히 시속 100km일 때 엔진회전은 2000RPM을 살짝 넘는 수준이어서 연비를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엔진소음도 적어 승차감을 개선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소형차에 적용되는 기존 4단 자동변속기는 시속 100km일 때 보통 2500RPM 안팎이다.

연비는 일반적인 서울시내 주행에서 L당 12km, 고속도로에서는 16km 정도가 나왔다. 시속 100km로 정속 주행할 때는 L당 18km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 한 단계 성숙한 승차감

소형차와 승차감은 상극(相剋)이다. 차체가 가볍기 때문에 조금만 스포티하게 하면 너무 튀고, 부드럽게 만들면 고속주행에서 휘청거린다. 하지만 신형 엑센트는 스포티함과 부드러움을 잘 조화시켰다. 현대차가 엑센트의 스포티함을 강조하는 광고를 하고 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부드러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약간 빠르게 과속방지턱을 넘어갈 때 차체에 전해지는 충격이 기존 준중형급 정도로 줄어 부드러운 듯하지만 차체는 오랫동안 출렁거리지 않고 짧은 시간에 제 자세를 잡는다. 분명히 한 번 정도는 더 출렁거릴법한데도 1.5회 정도만 상하진동을 한 뒤 바로 평형을 유지해 일반 브랜드 소형차로는 기대이상의 승차감을 제공한다.

핸들링 반응은 준중형급인 ‘아반떼’보다도 늦어서 다이내믹한 운전은 기대하기 힘들다. 운전대를 돌리면 차가 방향을 전환하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좌우 커브가 급격하게 이어지는 도로에서는 반박자 빨리 운전대를 움직여야 리듬을 맞출 수 있다. 시승차에는 16인치에 편평비 50시리즈 타이어가 들어있었는데 하위 트림의 14인치 70시리즈 타이어였다면 핸들링 반응성은 더 떨어졌을 것이다.

코너링 성능은 핸들링에 비해서는 괜찮은 편이다. 약한 언더스티어 세팅으로 맞춰져 있어서 운전하기 편하고 후륜의 추종성도 좋아서 웬만큼 강하게 몰아부쳐도 차체는 급작스런 거동을 보이지 않고 안정적인 모습을 보인다. 전동식 스티어링시스템도 업그레드돼서 장난감 운전대를 조작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시속 140km를 넘어서면 전체적인 주행안정성이 깨지기 시작하는 점은 소형차의 한계를 느끼게 했다.

외부 소음은 시속 80km까지는 ‘소형차 맞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 차단돼 있다. 그 이상부터는 슬금슬금 소음이 귀에 거슬리기 시작해서 시속 120km부터는 시끄럽다는 느낌을 주기 시작한다.

○ 싱글들이여, 소형차로 돌아오라

과거 소형차는 자동접이식 아웃사이드미러, 선루프, 후방카메라, 사이드에어백 등 고급 옵션을 선택할 수 없는 경우도 많아서 실용적이면서도 편의장치가 풍부한 자동차를 원하는 소비자들을 흡수하지 못했다.

그런데 신형 엑센트는 운전석·동승석 에어백은 물론 사이드와 커튼 에어백, 후방주차센서가 기본 장착돼 있다. 여기에다 트림에 따라 인슬라이딩 선루프, 후방카메라, 인텔리전트 DMB내비게이션, 버튼 시동장치, 슈퍼비전클러스터(계기반), 풀오토 에어컨까지 선택이 가능하다.

실내공간도 약간 넓어져서 일반적인 체구의 성인 4명이 탔을 때 구겨져 앉는다는 느낌은 주지 않아 중학생 이하 자녀를 둔 가정에서는 조금 부족하더라도 패밀리카로 쓸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만 실내 마감재질은 감촉이 너무 딱딱하고, 윈도우를 닫을 때나 오토도어록을 잠글 때 소리가 크게 나서 감성품질을 조금만 더 높였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소형차와 준중형차에 약간의 아쉬움을 남겨놓으며 중형차로 유혹하는 것은 현대차의 최대 특기인 모양이다.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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