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장인은 어디서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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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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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청사기, 조화, 어문양·우희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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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동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1508년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명령으로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그리게 되었을 때 생겨난 말입니다. 높이 20m, 길이 41.2m, 폭 13.2m의 천장에 천지창조를 중심으로 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 미켈란젤로는 사람의 출입을 막고 무려 4년 동안이나 혼자 성당에 틀어박혀 그림에만 전념했습니다. 어느 날 친구가 찾아와 천장 밑에 높은 작업대를 세우고 고개를 뒤로 젖힌 채 힘들게 작업하는 그에게 물었습니다. “여보게, 잘 보이지도 않는 천장 구석인데 왜 그렇게 정성을 들여 그림을 그리나? 그림이 제대로 그려졌는지 누가 알겠나?” 그러자 무심한 어조로 미켈란젤로가 대답했습니다. “내가 알지.”

‘미켈란젤로의 동기’는 우리로 하여금 장인정신이 무엇인지를 설명 없이 일깨웁니다. 조수도 두지 않고 4년 동안 사력을 다한 각고의 노력 끝에 그림을 완성한 미켈란젤로는 등이 휘는 고통을 겪었지만 그가 느꼈을 자기만족은 당사자 말고는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천국의 희열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지금도 로마를 찾는 사람으로 하여금 성당을 방문해 깊은 경외감으로 천장을 우러르게 합니다. 시대와 역사를 초월하는 이월가치의 자궁, 그것이 바로 장인정신입니다.

우리 조상 중에도 자랑스러운 장인이 많았습니다. 국보와 보물로 손꼽히는 수천 가지 유물이 모두 장인정신의 산물이니 일일이 열거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들은 얼굴도 드러내지 않고 역사의 행간에 이름을 올리지도 못했지만 그들의 영혼과 손길이 어우러진 유물은 시간을 초월하는 이월가치를 드러내며 오늘도 곳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계승한 많은 사람이 대를 이어가며 오늘날까지 숭고한 장인정신의 맥을 잇고 있습니다.

장인정신의 핵심은 혼입니다. 세상이 산업화되고 기계화되는 와중에 많은 장인이 사라지고 또 홀대받아 온 게 사실입니다. 자본주의적 무한경쟁 시스템 속에서 영혼을 팔고 세속화된 장인도 많습니다. 국새 제작의 전통기법 소유자라던 사람이 금도장 로비로 대국민 사기극을 연출하고 사법처리되는 광경은 우리를 우울하게 합니다. 장인이 사라지고 장인 행세를 하는 사람이 득세하는 세상은 장인이 나고 자랄 만한 토양이 아님을 방증합니다. ‘미켈란젤로의 동기’를 순수하게 지키면서 장인의 길을 갈 수 있는 사회적 풍토가 아니니 국새 제작의 대국민 사기극은 우리 모두의 무관심이 불러온 합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복원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광화문 현판이 또다시 시비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금강송 사용 여부를 놓고 벌이는 설전이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나 장인성을 의심받고 누구나 장인성을 무시하고 나설 수 있는 용기를 보인다는 게 더 심각하게 여겨집니다. 장인은 스스로 탄생하는 게 아니라 재능을 지닌 개인의 극기와 시대적 배려가 함께 어우러져야 비로소 찬란한 광휘를 얻게 됩니다. 그와 같은 관점에서 지금 우리 사회는 장인을 필요로 하면서도 장인을 중시하지 않고, 장인을 중시하지 않으면서도 장인의 순수성을 강요합니다. 장인이 나고 자라고 뿌릴 내릴 만한 토양이 아쉽게 느껴지는 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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