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산책]이샘물/끊임없이 질문하는 교수님, 국내서도 봤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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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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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가장 좋아하는 시대는 언제니?” 미국의 뉴욕주립대에 와서 들은 첫 역사수업 때 외국인 친구가 물었다. 어느 시대가 가장 찬란했던 시대로 꼽히는지 배운 적은 있다. 그런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대가 언제인지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한국의 어떤 수업에서도 그런 질문은 받아본 적이 없었다. 대답하려니 막막했다.

한국에서 역사를 배운 나는 정답에 익숙했다. 여러 가지 사건을 배우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배우곤 했다. 다양한 관점을 배울 때도 어떤 학파가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배웠다. 내 의견이 무엇이고 나의 관점은 무엇인지 생각하는 데에는 익숙지 않았다.

미국의 역사수업은 신선했다. 수업은 왜 이것을 배워야 하는가라는 질문부터 시작했다. 정답은 없었다. 각자 나름대로의 이유와 근거를 말하고 들으면 됐다.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된 후에도 사건이나 텍스트에 관한 강의는 거의 없었다. 학생은 책을 읽고 스스로 내용을 파악해 왔다. 교수는 질문을 여러 개 준비해서 학생들에게 물었다. 학생들은 끊임없이 고민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토론해야 했다.

수업시간에 열심히 필기를 해서 시험 답안지에 정답을 빠짐없이 꼭꼭 채워 넣으려던 내 계획은 빗나갔다. 수업에 정답이 없었기 때문이다. 교수는 강의자라기보다는 질문자에 가까웠고 수업시간은 학생의 의견으로 가득 찼다. 노트에 적을 수 있는 내용은 학생이 가진 다양한 관점과 생각이었다.

미국에 와서 수강신청을 하며 강의계획서를 살펴본 적이 있다. 인문학 과목은 하나같이 비판적인 사고를 기르는 일을 목표로 했다. 학생들이 졸업 후에 어떤 경력을 갖게 되든지 무언가에 대해 깊게 이해하고 논리적으로 생각을 말하는 능력을 길러줘야 한다는 취지였다. 수업 방식에는 이 같은 철학이 녹아 있었다. 교수가 많은 독서를 숙제로 내도 학생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였다. 한국에서는 한 주에 한 권의 책을 읽어야 하는 수업은 소위 ‘빡센’ 수업에 속했지만 이곳에서는 일반적이었다.

여러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사람이 수두룩한데 왜 인문사회 분야에는 세계적인 학자가 없느냐고 한다. 한국인이 인문학을 홀대해서일까? 얼마 전 방한한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저서와 강연에 열광하는 한국인을 보면 꼭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무엇이 우리의 인문학적 감수성을 가로막는 걸까.

이샘물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3학년 본보 대학생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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