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칼럼]MB의 많지 않은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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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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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 해도 절반이 갔다. 3월 26일 천안함 사건, 6월 2일 지방선거 여당 패배, 6월 26일 한미 간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연기 합의, 6월 29일 세종시 수정안 국회 부결이 있었다.

개헌 같은 정치어젠다 성공 난망

지방선거 패배와 세종시 수정 무산은 이명박 대통령 ‘절반의 임기’ 국정 운영을 더 어렵게 할 것이다. 지방권력을 많이 장악한 야당과 야당계 무소속은 법률의 한계를 넘어서까지 MB 정부의 성공을 방해할 것이다. 정권을 잃은 지 2년 반 만에 정권 탈환의 승기(勝機)를 잡았는데, 이 정부의 순항을 도울 리 없다. 민주당과 그 왼쪽에 있는 모든 야당은 한나라당 정권이 아닌 정권을 창출하는 데 필요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것이다. 야당의 훼방을 국정의 주요 변수로 인정하고 이를 뚫어내는 정부라야 진짜 실력 있는 정부다.

자유선진당을 제외한 야권은 후보 흥행요소를 총동원해 인물군(人物群)을 만들어내고, 극적인 단일화를 이뤄내 국민의 마음을 강렬하게 흔들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우파 정치세력이 분열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패배만이 기다릴 것이다. 그럼에도 한나라당은 2007년 대통령 후보 경선 이후 친이(친이명박) 친박(친박근혜) 구도를 깨지 못하고 자해(自害)를 거듭했다. 그제 세종시 수정안 부결 과정은 그 결정판이라고 할 만하다. 세종시 파동은 이 대통령의 정치기반이 사실상 소수여당임을 입증했다.

이런 정치환경에서는 이 대통령이 너무 욕심을 낼 일이 아니다. 개헌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야당의 합의를 얻어내자면 온갖 요구를 들어줘야 할 텐데, 그렇게 되면 헌법은 누더기가 돼버릴지도 모른다. 친박그룹이 박 전 대표의 대권 가도에 장애가 되는 개헌안에 동조할 리도 만무하다. 개헌카드를 잘못 꺼내면 세종시 수정안에 이어 또 한번 야-박(野-朴)연대 앞에 허리가 꺾이고, 그야말로 조기 레임덕(권력누수)에 직면할 수도 있다. 지방행정체제와 선거구제 개편도 청와대가 깃발을 들면 동력이 떨어질 소지가 있다. 검찰개혁 같은 것도 검찰의 칼끝이 대통령 측근을 직접 겨냥하게 만들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 후폭풍에 국정기반이 무너져버리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이 대통령은 외국에 나가서 받는 찬사에 비해 국내에선 충분히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고 섭섭해할 수도 있지만, 그런다고 상황이 호전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이 분노를 느끼고 이를 감추지 못하면 오히려 국민이 더 멀어지고 만다. 참고 또 참으며, 최대한 많은 국민이 체감할 ‘좋은 변화’를 만들어내는 길밖에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이 민생경제와 일자리다. 대다수 국민에게 무엇보다 절실한 것은 ‘내 재산과 내 일터’다. ‘경제대통령 이명박’을 원한 국민들은 기대치를 채우지 못했다고 인식한다. 좋은 숫자만 골라 국민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야당도 불안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민주당 안에는 “MB가 임기 중에 4대강 사업을 성공시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라며 ‘청계천의 악몽’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청계천 하나 가지고 저렇게 떴는데, 4대강이 죽음의 강에서 환골탈태하면 자신들의 설 자리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한나라당의 정권 재창출을 막기 위해선 4대강 사업이 MB 뜻대로 되게 놔둘 수가 없는 것이다.

경제와 안보와 4대강이 승부처

천안함 사건은 북한의 위협에 대한 불감증에서 깨어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체제와 자신을 지키기 위해 피 흘릴 생각은 없는 사람들의 집단’처럼 돼버린 대한민국을 동시에 봤다. 이런 국민의식과 이에 아부하는 평화 포퓰리즘으로 어떻게 자주국방을 하겠다고, 노무현 정부는 미국한테서 전시작전권을 돌려받기로 했는지 참으로 무책임했다. 그저 평화라는 말만 되뇌면 평화세력이고, 어떤 전쟁에도 대비하자고 하면 전쟁세력이라고 분류하는 사람들이 득세하는 나라가 진짜 평화를 지킬 수는 없다. 국가의 안보태세와 사회의 안보의식이 굳건해지지 않는다면 전시작전권 전환 시점을 2012년 4월에서 2015년 12월로 늦춘다고 안심할 수 없고, 5년 뒤엔 자주국방을 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MB 정부가 남은 임기에 또다시 결정적인 안보 실패를 초래한다면 그때는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을 것이다. 정권의 재창출도 안보를 지킬 수 있는 정권일 때 의미가 있다. 대한민국을 무너뜨리려는 적 앞에서도 전쟁을 겁내기만 하는 국민들에게 영합하는 정권이 들어선다면 이는 불행이요 재앙이다. 이 대통령은 평화 포퓰리즘에 편승할 것이 아니라 국가 안보태세와 국민 안보의식을 강화하는 데 리더십을 발휘함으로써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제고하고, 정권 재창출의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결국 MB 정부의 성공 여부는 안보와 경제의 재건, 그리고 MB의 브랜드가 된 4대강 사업의 성패에 달려 있을 것 같다. 너무 많은 정치 어젠다를 던져 힘을 빼는 것은 득책(得策)이 아니다.

주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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