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칼럼]원하는 교육감을 뽑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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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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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단일화 실패로 유권자 民心왜곡
‘이념적 동지’ 전교조와의 불법 막아야

서울의 곽노현 교육감 당선자와 경기도의 김상곤 교육감은 ‘진보 교육감’으로 분류되지만 같은 진보 중에서도 이념적으로 민주당보다 민주노동당에 가깝다. 각각 방송통신대와 한신대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에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전국교수노조, 시민단체 등에서 활동했던 이력을 갖고 있다. 이들을 지지했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성향을 봐도 그렇다.

전국의 초중고교 학생 744만 명 가운데 서울시와 경기도에 거주하는 학생은 314만 명으로 전체의 42.2%에 이른다. 두 후보가 맡게 될 서울과 경기도교육청은 전국 16개 교육청 가운데 2개에 불과하지만 학생 규모와 수도권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이들의 당선이 지니는 의미는 크다. 한국을 대표하는 지역에서 교육 분야만큼은 민주노동당으로 ‘정권 교체’가 이뤄진 것과 다름없다.

물론 교육과학기술부도 국가 차원에서 교육정책을 입안하고 있지만 일선 교육청이 정부 지침을 거스르면 뾰족한 수가 없다. 정부 정책을 현장에서 실행하는 권한은 교육감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의 경우 교과부가 요구한 시국선언 교사 징계를 미루어 직무유기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더구나 두 교육감 당선자는 ‘반(反)이명박 교육’을 내걸고 나왔다. 정부의 주요 정책에서 사사건건 마찰이 불가피하다.

이들이 지역교육을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갈지 주목된다. 국제중 외국어고 자율형사립고에 대해서는 상당한 규제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수월성 교육을 위축시킬 공산이 크다. 학교가 학생들에게 두발 길이를 제한하거나 반성문을 강요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내용 등으로 논란을 일으켰던 학생인권조례도 본격적으로 제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십 년 유지돼 온 학교 내부의 규율과 질서를 송두리째 바꾸는 일이다. 교육현장에 그야말로 혁명적인 회오리가 몰아칠 수 있다.

유권자들도 이런 일들을 어느 정도 내다본 듯하다. 서울의 곽노현 당선자를 지지한 유권자는 34.3%에 그쳤다. 2위를 차지한 보수 쪽의 후보는 불과 1.1%포인트 뒤졌다. 보수 후보들이 난립하지 않았다면 결과는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김상곤 당선자 역시 득표율이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42.3%였으며 나머지 세 후보는 모두 보수 성향이었다. 교육에서 급진적 변화를 꺼리는 학부모의 심리가 작동했음을 알 수 있다.

전교조에 대한 반감이 강한 수도권 정서 속에서 ‘보수가 단일화하면 필승’이라는 점을 잘 알면서도 보수 후보들은 자멸의 길을 택했다. 유권자들의 표심은 왜곡되고 원치 않는 교육감을 뽑는 결과가 빚어졌다.

새 교육 권력자들이 지지 세력인 전교조와 어떤 관계를 유지하게 될지가 비상한 관심사다. 정치 집단으로 변질되면서 가입 교사가 계속 줄어들고 있는 전교조로서는 최대의 후원자를 만난 셈이다. 교원 인사의 전권을 쥐고 있는 두 교육감이 도장 찍기에 따라 전교조 소속 교사들은 마음껏 날개를 펼 수 있게 됐다. 교육감은 교사들로부터 지역교육의 역량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감독자, 경영자 역할을 해내야 하는데 이념적 동지들끼리 같은 직장에서 만났으니 얼마나 큰 부작용을 부를지 걱정이다. 사리사욕을 앞세운 보수 후보들이 초래한 최악의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정부와 교육청의 대립과 갈등, 교육감의 어설픈 실험은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고 국가의 장래까지 막아설 것이다. 학부모들이 주시하면서 필요할 경우 강한 제동을 거는 수밖에 없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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