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들여다보기’ 20선]<18>아프리카에서 온 그림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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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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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온 그림엽서/후지와라 아키오 지음·조양욱 옮김·예담

아프리카를 구하러 왔나요?

《“그 영국인도 그렇고, 이제까지 보아온 외국인들도 그렇고, 당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곳에 와서 불과 얼마 시간이 흐르지 않았음에도 모조리 간파해 버려요. 필경 2, 3일만 있으면 이 조그만 지역을 빠짐없이 훑어버리겠지요. 우리가 평생 다 보지 못하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돌아가서는 책을 읽거나 다른 이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더 자세히 알게 됩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영토로 둘러싸인 작은 왕국 레소토에서 최고의 인텔리로 꼽히던 70대 노교사는 자신을 찾아온 일본인 기자를 이렇게 칭찬한다. 일본 마이니치사의 특파원인 저자는 당황한다. 본사에서 ‘정보와 20세기’란 거창한 주제의 기획기사를 원고 마감 이틀 전에야 부탁받고 허겁지겁 이 노교사를 섭외한 뒤 뭐든 기삿거리가 없을지 시시콜콜 캐묻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취재를 마치고 사진을 찍던 저자에게 노교사는 1934년에 찍힌 흑백사진을 보여준다. 당시 영국령이었던 레소토의 어린이들이 벌거벗고 크리켓을 하는 사진이었다. 그 사진 속에서 크리켓 배트를 들고 서 있던 어린이가 노교사다. 저자가 사진을 찍으면서 거듭한 “좀 더 자연스럽게”란 주문이 60년 전 노인을 카메라에 담았던 영국인의 말과 같았던 것이다.

관광용으로 찍어서 팔았던 그 사진이 11년 뒤 사진 속 주인공에게 다시 흘러들어간 사연을 저자는 기사화한다. 기사는 정보화 선진국인 영국의 사례와 묶여 ‘남북격차’란 판에 박힌 제목으로 신문에 나간다. 빈곤으로 정보화에 뒤진 아프리카를 얕잡아보는 시각이 담긴 제목이었다.

하지만 현장에 있었던 저자의 느낌은 그 반대에 가깝다. 소위 선진국 사람들의 발 빠른 정보력에 감탄하면서도 “설사 돈과 시간이 있더라도 우리는 그게 불가능해요”라며 꺼낸 교사의 말 때문이다.

“산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궁금하겠지만, 그보다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건 기질의 차이예요. 일부러 낯선 곳으로 가서 새로운 것을 찾는 것보다 이 주변에서 예로부터 알고 지내온 사람과 더 깊이 사귀는 쪽을 택하리라는 기분이 들어요. 바로 곁에 있는 친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니까요.”

이 책은 이렇게 1995∼2001년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특파원이었던 저자가 만난 다양한 인물을 담았다. 독수리 앞에 무방비로 노출된 흑인 어린이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했지만 마약 중독으로 자살한 백인 사진기자, 남아공 흑백갈등 와중에 교통사고로 다친 백인 3명을 TV 카메라 앞에서 총살한 흑인 경관, 아프리카산 다이아몬드 거래의 중추가 된 혼혈인들, 아프리카에 혁명을 수출하려다 7개월 만에 좌절하고 남미로 돌아간 체 게바라…. 거기엔 아프리카 하면 떠오르는 검은 피부, 가난, 범죄, 인종차별, 자연 그대로의 순수함, 그리고 아프리카인들을 도와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통념을 무너뜨리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저자의 다음 말이 정곡을 찌른다.

“누군가 극히 자연스럽게 ‘아프리카를 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사람은 아프리카를 완전히 대등한 상대로 여기지 않게 된다. 친구와 같은 관계가 사라지고, 심하게 표현하자면 지배와 예속에 빠져들고 만다. 막연히 수많은 사람에게 원조할 궁리를 하는 것보다는 구해야 할 상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선진국 정상회담장을 둘러싸고 ‘빈곤 해소, 빈부격차 시정’ 등을 외치는 젊은이들이 있는데 난 그들에게 1년이라도 좋으니까 아프리카에 가서 살아보라고 말해 주고 싶어진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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