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하태원]워싱턴의 맥빠진 ‘코리아 컨센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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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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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부(府)’의 권력기관으로 불리는 미국 싱크탱크는 워싱턴 주재 한국 특파원들의 주요 출입처 중 하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질서의 흐름을 주도해 온 국가답게 전 세계 구석구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연구와 토론의 주제다. 당연히 한국을 포함한 한반도 문제 역시 미국 주요 이슈 중 하나고 최소한 매주 3, 4개의 한국 관련 공개 세미나가 열린다. 한국문제를 업(業)으로 삼는 ‘한반도 전문가’도 따로 존재할 정도다.

한국 관련 세미나를 포함한 공개행사는 대부분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된다. 발표자나 듣는 사람들이나 서로 너무 잘 아는 경우가 많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국무부, 국방부에서 한국문제를 다룬 경험이 있는 전직 관료들이나 싱크탱크 등에서 한국문제를 다루는 사람 역시 손에 꼽을 정도여서 인재풀이 넓지 않은 편이기 때문이다. 청중의 절반 이상이 한국 사람인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러다 보니 세미나는 치열한 토론의 장이 되기보다 별다른 쟁점 없는 맥 빠진 의견교환의 자리가 되는 사례가 많다. 더군다나 한반도 문제라고는 하지만 미국에서 주로 다뤄지는 관련 이슈가 북한의 핵문제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문제를 포함한 북한의 체제 안정성 등에 관한 일이다 보니 더욱 그렇다. 뉴욕 북한대표부에 주재하는 북한 외교관이 참석하는 행사 역시 거의 찾아보기 어렵고 ‘악행’을 되풀이할지언정 북한을 대변한다고 자처하는 전문가 역시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최근 열렸던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관련한 세미나도 전작권 전환에 찬성하는 인사가 단 한 명도 발표자나 토론 패널로 참석하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미국 내에서 모처럼 열린 전작권 관련 세미나였지만 갑론을박이 이뤄지기보다는 전작권 전환을 반대하거나 연기하자는 사람들의 목소리만 가득했다. 결국 건설적인 대안이 나오지는 못해 미국 내 정책결정자들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물론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한반도 관련 연구 저변이 크게 확대됐고 연구 주제도 다양해진 것은 사실이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 사상 처음으로 한국석좌가 생겨 빅터 차 전 NSC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이 활동을 개시한 것을 비롯해 한미경제연구소(KEI)와 코리아소사이어티 등에서는 연중 한국문제에 대한 연구가 중단 없이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인 지한파 한반도 전문가인 스콧 스나이더 아시아재단 선임연구원은 재단 내에 한미정책연구소를 따로 개설해 북핵문제,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문제, 한국의 자원외교와 미국의 신재생에너지 정책의 협력방안 모색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정책대안을 활발히 제시하고 있다. 재단은 랜드연구소, 우드로윌슨센터 등 각종 연구소와 대학 정책연구소에 한국연구사업 지원으로 올해 145만 달러를 쓴다. 또 미시간대, 터프츠대, 조지아공대 등 32개 대학 한국학 및 한국어 지원에 263만 달러를 책정했다. 특히 5년간 350만 달러의 기금 확보를 목표로 개설한 한국학 석좌는 한국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지향할 일종의 ‘꿈’을 제시한 셈이다.

한국문제를 주제로 워싱턴에서 벌어지는 토론이 비록 즉석에서 ‘코리아 컨센서스’를 도출하지 못해도 괜찮다는 생각이다. 젊고 촉망받는 새로운 연구자들이 도발적인 문제제기를 하고 다양한 의견을 가진 각계의 전문가들이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이 더욱 건강한 토론의 장이다. 그럴 때 한국문제는 더 많은 정책결정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하태원 워싱턴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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