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들여다보기’ 20선]<6>다이아몬드 잔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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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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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과 피로 물든 영롱함
◇ 다이아몬드 잔혹사/그레그 캠벨 지음·작가정신

《“이스라엘 달라미는 1996년 도끼에 두 손을 잃었다. 그는 도끼가 손을 내리쳤을 때의 고통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총을 들이댄 자들의 명령으로 이웃사람들의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나무 그루터기 위에 손목을 올려놓았던 것은 기억한다. 달라미는 그들에게 저항하거나 자비를 구걸하지 않았다. 대신 아들이 서투른 솜씨로 만들어준 반지를 왼손가락에서 빼내 주머니에 넣었다. 그의 손이 한 마지막 일이었다.”》
영국의 지리학자들이 1930년대 서아프리카에 위치한 시에라리온에서 처음으로 다이아몬드를 발견한 이후 정글 속에 다이아몬드 원석을 캐기 위한 수많은 진흙 구덩이가 파헤쳐졌다. 시에라리온은 매년 60억 달러어치의 다이아몬드를 팔고 있으며 이들 가운데 80%는 미국 소비자들이 고객이다. 보석이 넘치는 나라지만 정작 시에라리온 국민은 다이아몬드 광산을 둘러싼 내전의 희생자일 뿐이다.

달라미가 반군인 혁명연합전선(RUF)에 잡혀 양손을 잃을 무렵 시에라리온 정부군과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의 휴전감시단은 RUF와 시에라리온 곳곳에서 대치 중이었다. 대부분 글도 모르고 약에 취한 10대 소년들로 구성된 RUF는 동족을 처참히 죽이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앙골라완전독립민족연합과 콩고민주공화국의 반군들도 전쟁 비용을 대기 위해 총칼을 앞세워 다이아몬드 광산을 노렸다.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서아프리카에서 약탈된 다이아몬드가 아프리카 반군뿐 아니라 헤즈볼라나 알 카에다와 같은 국제 테러단체의 자금으로도 흘러들어간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2001년 유엔의 허가를 얻어 시에라리온 깊은 밀림 속에 위치한 봄보마 다이아몬드 광산을 찾아갔다. “갈비뼈가 훤히 드러날 정도로 비쩍 마른 몸에 반바지를 입고 온통 진흙범벅이 된 남자들이 사방에 있었다. 광부들은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일한다. 점심시간도 휴일도 없었으며 이들에게는 매일 쌀 두 컵과 50센트가 지급될 뿐이었다.”

다이아몬드를 찾는 방법은 50년 전이나 똑같이 원시적이다. 지하수가 나올 때까지 10m 남짓 깊이의 커다란 구덩이를 판다. 광부들이 삽으로 흙을 떠서 체를 붙인 나무 통 속에 던져 넣고 양수기로 물을 뿜어 큰 돌과 작은 돌멩이를 분리한다. 나무통을 통과한 작은 돌멩이를 다시 둥그런 체에 담고 수면 위에서 흔들어 다이아몬드가 포함돼 있을지 모를 작은 돌멩이를 골라낸다.

다이아몬드 원석을 발견해도 환성은 터지지 않는다. 자갈을 씻던 인부가 낮게 휘파람을 불면 관리자가 감정한 뒤 가져갈 뿐이다. 이렇게 찾은 원석은 미국 뉴욕, 인도 뭄바이 등에서 세공 과정을 거쳐 수백, 수천 달러짜리 귀중품으로 변신한다. 하지만 만약 광부가 목숨을 걸고 다이아몬드를 빼돌려 시에라리온의 상인에게 직접 판다고 해도 고작 5달러를 손에 쥘 뿐이다.

1961년 영국의 식민지배에서 독립한 시에라리온은 1991년부터 10여 년 동안 이어진 정부군과 RUF 반군 사이의 내전으로 황폐해졌다. 테잔 카바 대통령이 2002년 내전 종료를 공식 선언하면서 다이아몬드를 둘러싼 살육전은 끝난 듯하다. 그러나 저자는 말한다. 밀수 다이아몬드에 대한 국제적인 수출입 통제를 실시하고 다이아몬드를 생산하는 아프리카 극빈국의 생활환경을 개선하기 전에는 우리가 소중하게 간직한 다이아몬드도 한 아프리카인이 흘린 피의 산물에 불과할 수 있다고.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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