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신남식]호랑이는 두 번 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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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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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호랑이의 해. 더욱이 60년 만에 찾아오는 백호의 해라 하여 새해 벽두부터 호랑이에 대한 이야기가 신문 방송 등 언론매체를 통해 많이 나왔다. 백호가 포효하는 경인년 새해, 설화의 사신(四神) 중 유일한 실존동물인 백호 등 호랑이의 용맹성과 설화와 옛 이야기에 나오는 호랑이를 바탕으로 다른 해와 차별을 두며 상서로운 기대를 표현하는 것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렇게 알려진 이야기 중 일부는 호랑이의 생태나 특성과는 조금 다른 부분도 있다.

예로부터 우리의 역사와 문화 속에 함께해온 사신(청룡 백호 주작 현무) 중 백호는 유일한 실존동물이라 하지만 옛 고분 벽화의 백호는 현존하는 백호의 모습과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현존하는 백호의 기록은 19세기 중반에서 시작되고 그 중심은 인도와 네팔이다. 이 지역에 분포하는 호랑이는 벵골호랑이로 분류돼 백호는 이 벵골호랑이에서 유래된 백색변종이다. 그래서 백호는 학명(Panthera tigris tigris)도 벵골호랑이와 같이 표기한다. 우리나라에 분포했던 호랑이는 시베리아호랑이(Panthera tigris altaica)인데 지금까지의 백호 중에는 시베리아호랑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아주 옛날 우리나라에 백호가 존재하였다가 멸종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그림의 형상과 실존 백호의 분포로 보아 사신 중 백호도 호랑이의 신성함을 더한 상상의 동물인 백호를 그렸을 가능성을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다.

백호는 현재 야생 상태에서는 멸종됐다고 추정되며 동물원에서만 볼 수 있는데 이 백호는 모두 1951년 인도의 레와(Rewa) 지방에서 포획된 수컷 백호 모한(Mohan)의 자손으로 초기에는 황색의 일반호랑이와의 교잡과 근친번식을 통해 그 종을 유지했다.

호랑이의 포효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왔다. 동물이 포효한다는 것은 용맹한 기개를 나타내므로 인간사에 있어서도 강함, 진취적 기상, 승리 등 긍정적인 표현을 하는 데 많이 쓰이고 있다. 포효는 일시에 뿜어 나오는 크고 우렁찬 소리로 고양잇과 동물 중 대형 고양이 즉, 호랑이와 사자만이 낼 수 있다. 다른 고양잇과 동물과는 달리 설골이 완전히 골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포효를 할 수 있는 것이다.

호랑이의 포효와 사자의 포효는 양상과 상황이 조금 다르다. 사자는 싸움에 이기고 나서 내가 이겼다는 신호로 연거푸 포효를 한다. 그리고 이른 아침과 저녁에 백수의 왕임을 선포하듯이 수차례 포효를 하면서 자기 영역을 굳게 지킨다. 조용한 성품의 호랑이는 수시로 포효하는 사자와 달리 평상시에는 포효를 하지 않는다. 어쩌다 상대방을 제압하고자 할 때 단발성의 포효만 가끔 있을 뿐이다. 호랑이는 단독생활을 하면서 평균 수백 km²의 영역을 갖고 있으므로 자연 상태에서 호랑이의 포효를 듣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일반적으로 호랑이가 ‘어흥’ 하는 포효를 반복하는 것으로 안다. 10년 전 여름 경북 영천지역에서 호랑이가 발견되었다 하여 현지조사를 하던 중 호랑이 소리를 들었다는 현지인은 어흥 하는 포효가 계속해서 들려왔다고 했다. 필자는 호랑이가 틀림없다는 그의 말을 바로 흘려버려야 했다.

사실이야 어떻든 설화나 신화, 우리의 이야기 속에서는 호랑이가 담배를 피울 수 있으며 곶감을 무서워할 수도 있고 쑥과 마늘을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사실과 전문성이 필요한 과학의 영역에서 때로는 설화나 신화가 등장하여 사실이 왜곡되고 전문성을 훼손시키는 경우가 우리의 주변에서 가끔은 있는 것 같다.

신남식 서울대 수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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