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테마 에세이]목도리<4·끝>남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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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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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줄’처럼…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목의 사전적 정의는 머리와 몸통을 잇는 부분이다. 하지만 목이라는 말은 여러 곳에 두루 쓰인다. 신체 부위만 해도 원래의 목만이 아니라 손목이나 발목도 있다. 또 병목이나 건널목처럼 사물과 지리에도 목이 들어간 말이 많다. 공통적인 뜻은 명백하다. ‘잘록한 부분’이 곧 목이다. 모든 목은 양쪽의 큰 두 부분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 목을 감싸는 물건이 목도리다.

목은 중요한 부분이지만 위치상 겉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고 그런 만큼 추위를 많이 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겨울이면 옷 이외에 따로 목도리를 착용하는 게 보통이다. 사실 나는 목도리를 쓰지 않는다. 심한 추위를 느낄 정도로 목이 길지 않은 탓도 있고 목도리가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는 딱한 체형과 외모를 가진 탓도 있다. 그런 불행한 이유로 나는 목도리를 구입하거나 착용한 적이 없고, 몇 차례 선물로 받은 것도 전부 남에게 줘버렸다.

자연히 목도리에 관한 기억도 별다른 게 있을 리 없다. 그래서 내게는 목도리 자체에 얽힌 단상보다 목도리가 가지는 상징성이 더 친밀하게 다가온다.

가만 보면 목도리는 특이한 데가 있다. 몸에 착용하는 것들 가운데 유일하게 신체 어느 부분에 고정시키지 않는 게 바로 목도리다. 저고리는 어깨에 걸치고 아래쪽으로 향하는 바지와 양말은 흘러내리지 않도록 허리와 발에 고정시킨다. 모자는 머리에 얹고 장갑은 손에 낀다. 속옷도 고무 밴드나 스판 조직으로 몸에 착 달라붙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유독 목도리만은 아무런 고정 수단이 없이 그냥 목에 휘휘 감는 방식으로 헐렁하게 착용한다. 그런 이유에서 목도리는 방한용만이 아니라 자유로이 멋을 연출하는 중요한 소품이 되기도 한다.

자유로운 착용 방법으로 목이라는 중요한 부분을 감싸는 게 목도리의 역할이자 매력이라면, 목도리에서 다른 상징적 의미를 유추할 수 있지 않을까. 이를테면 우리 사회의 곳곳에 꽉 막혀 있는 소통의 병목이 얼어붙지 않도록 목도리로 살포시 감싸주는 거다. 우리는 지금껏 소통의 병목으로 분리된 양측의 주장에만 주의를 기울였을 뿐 소통로 자체에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 결과는 늘 양측의 파괴적인 충돌이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면서 실상 중요한 고리의 역할을 하는 소통의 병목을 목도리로 따뜻하게 감싼다면 그 양편에 도사린 독기 어린 대립 집단들의 황폐한 정면충돌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남경태 인문학 저자·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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