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소통]파격… 유머… ‘돌아온 백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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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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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 수상작가展-‘디지脫-다중적 감성’展■ 백남준아트센터展
피아노 부수는 퍼포먼스
벽에 꽂은 드릴 플러그 등
매체융합 백남준 정신 계승

■ ‘디지탈-다중적 감성’展
사람냄새 나는 디지털 예술
참여와 소통의 정신 보여줘

불 켜진 상태의 전등 스위치에 조명이 비치고 있다. 어디를 봐도 여느 스위치와 똑같아 보이지만 진짜 스위치가 아니다. 미술관에 사용하는 전등 스위치를 찍은 슬라이드를 프로젝트로 투사한 시엘 플로이어 씨의 설치작품 ‘라이트 스위치’.

일상의 오브제를 변형시켜 낯설게 만드는 것이 그의 장기다. 전기 드릴을 사용해 벽에 구멍을 내고 그 구멍에 드릴 플러그를 꽂아놓은 ‘드릴’, 삽으로 흙을 파내 옮기는 과정을 스피커로 들려주는 사운드 작업 ‘워킹 타이틀-땅파기’ 등. 예술작품과 사물의 경계에 자리하면서 유머가 담긴 그의 작업은 경기 용인시 백남준아트센터에서 만날 수 있다.

이 전시는 한국의 설치미술가 이승택(77), 무용가 안은미(47), 캐나다의 미디어 작가 로버트 에이드리언 엑스(74), 파키스탄 태생의 플로이어 씨(44) 등 제1회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 수상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다. 각기 작업은 다르지만, 모든 매체를 융합하며 길 없는 길을 개척했던 백남준의 예술정신을 창조적으로 계승한 점에선 닮아 있다.

○ 실험과 파격-백남준 정신


지난달 28일 오후 6시 백남준아트센터 앞에서 안은미 씨는 백남준의 생애 74년을 의미하는 74대 피아노와 25대의 크레인을 동원해 ‘백남준 광시곡’이란 파격적 퍼포먼스를 연출했다. 와이어를 사용해 공중에 올라간 안 씨가 크레인에 매달린 피아노의 끈을 자르는 퍼포먼스 영상을 악기의 잔해와 함께 전시장에 선보인다. 안 씨는 “악동 같은 장난기, 무한한 상상력과 막을 수 없는 무한한 에너지, 시대를 앞서간다는 점에서 백남준 정신과 내 작업이 통하는 부분이 있다”며 “이날만은 그의 신부가 되자는 생각에서 준비한 퍼포먼스”라고 말했다.

원로작가 이승택 씨는 시류를 따르지 않고 기존의 정치 사회 예술적 가치에 저항하는 작업을 추구해 왔다. 전시에선 그동안 노장의 창고에 잠자고 있던 1950년대 작품을 비롯해 지폐조각, 털 난 캔버스, 대지미술 등 평생의 작업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활동하는 엑스 씨는 인터넷 등장에 앞서 전화와 팩스 등 전자 네트워크를 활용한 커뮤니케이션 아트의 선구자. 1984년 감시비디오를 설치한 차를 몰고 빈을 돌며 찍은 영상은 누구보다 앞서 폐쇄회로(CC)TV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예술로 표현한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토비아스 버거 학예연구실장은 “이들은 실험과 도전정신으로 다른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아티스트”라며 “경계와 시공을 넘어, 박제화된 관습을 깨뜨린 작업에서 백남준 정신과 이어진다”고 말했다. 내년 2월 28일까지. 무료. 031-201-8571

한편 미국 스미스소니언미술관에 백남준연구기금을 조성하기 위한 전시도 2일까지 서울 플래툰쿤스트할레에서 열린다. 백남준의 비디오아트와 기록물을 모은 전시다. 02-3447-1191

○ 참여와 소통-백남준 미학

‘디지탈-다중적 감성’전에 나온 김기철 씨의 ‘Contact’. 관객이 마이크에 대고 말을 하면 인형이 키스를 한다. 사진 제공 갤러리 세줄
‘디지탈-다중적 감성’전에 나온 김기철 씨의 ‘Contact’. 관객이 마이크에 대고 말을 하면 인형이 키스를 한다. 사진 제공 갤러리 세줄
테크놀로지와 예술을 결합한 백남준. 그의 창조적 미학은 굳이 그 이름을 앞세운 전시가 아니라도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숱한 작가의 작업에 살아있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갤러리 세줄의 ‘디지탈(脫)-다중적 감성’전도 그중 하나로 참여와 소통을 중시한 백남준 미학과 맥이 닿아있다.

소리 조각가 김기철 씨의 ‘Contact’가 대표적이다. 긴 탁자 양 끝에 자리한 마이크 앞에서 두 사람이 말을 하면 중앙에 있는 봉제인형이 소리에 반응해 키스를 한다. 김영헌 씨는 디지털 매체와 인간 호흡의 상호작업을 보여준다. 비디오 속 인물이 숨을 불어넣으면 모니터 밖에 설치된 인형이 인공호흡으로 생명을 얻은 듯 부풀어 오른다.

관객에게 눈과 입을 탐색하는 체험을 유도하는 김도희 씨, 롤러코스터 구조물과 영상을 결합해 아날로그에의 향수를 표현한 이영호 씨, 소외된 인간 군상을 디지털 공간으로 드러낸 최성운 씨 등. 디지털 세계의 비인간화를 극복하는 시도를 담은 전시는 예술과 삶에 대한 새로운 사고를 일깨운다. 20일까지. 02-391-9171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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