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 윈도] 담배-쓰레기봉투 팔지 않는 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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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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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코 매장이 동네에 들어오는데 우리가 왜 반대해야 하나요?” 최근 영국 유통산업을 취재하려고 런던과 맨체스터를 방문했습니다. 그곳 소비자들에게 한국 유통업계의 첨예한 이슈인 ‘대기업슈퍼마켓(SSM)’ 문제에 대해 물어봤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오더군요. 중소상인들이 테스코 매장 진출을 반대하는 것을 본 적도 없다고 했습니다.

테스코는 영국 1위, 세계 3위의 유통업체입니다. 영국에 있는 테스코 매장만 2306곳, 영국 내 매출액은 415억 파운드(약 79조7000억 원)에 이릅니다. 국내 최대 대형마트인 이마트 매장이 SSM을 포함해 136곳인 점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영국 전역에 테스코 점포가 빈틈없이 촘촘하게 채워져 있는 셈입니다. 이렇게 많은 점포를 열면서 테스코가 지역 주민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지 않은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취재 과정에서 느꼈던 가장 큰 이유는 ‘배려’였습니다. 실제로 테스코 매장 직원들은 대부분 지역 주민들로 채워집니다. 특히 미혼모나 실업자 등 지역에서 소외받는 사람들을 직원으로 우선 선발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뽑은 사람이 7년 동안 4500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게다가 국내에서 아직 시행하지 못하고 있는 영업시간과 영업품목에 대한 사전조율을 합니다. 테스코 대외협력팀의 존 티머시 씨는 “점포를 열기 전에 지역사회 상인이나 주민과 회의를 열고 언제부터 언제까지 영업하며 어떤 물건을 팔 것인지 모든 과정을 협의한다”고 설명했습니다. SSM 문제가 한창일 때 국내 주요 대형 유통업체들은 SSM 설치 근거로 ‘지역 활성화’ 논리를 펼쳤습니다. SSM이 생기면 동네 구멍가게 상권도 같이 발전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지역을 위해 공헌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 상태에서 펼쳤던 ‘상권 부흥’ 논리가 잘 통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최근 대형마트 중 처음으로 중소상인들의 사업조정 대상이 됐던 롯데마트 광주 수완점이 문을 열었습니다. 이곳은 최종적으로 중소기업청이 “사업조정 대상이 아니다”라고 판정해 문을 열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결론에도 불구하고 롯데마트는 지역 상인들의 요청에 따라 담배와 쓰레기봉투 판매를 자체적으로 금지했습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담배와 쓰레기봉투까지 대형마트가 팔 필요가 있을까 해서 지역 상인들을 위해 양보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곧 SSM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나올 것입니다. 담배와 쓰레기봉투 정도의 조그만 양보와 배려를 기대하는 건 지나친 욕심일까요.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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