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크레디트]고전영화 복원 AZ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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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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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상된 장면의 움직임 되살리는 게 가장 고난도 기술”

현존하는 최고의 영화 ‘미몽’을 비롯해 ‘열녀문’ ‘연산군’ ‘하녀’ ‘검은 머리’ 등을 복원한 AZ웍스의 배재순 복원팀장. 부산=염희진 기자
현존하는 최고의 영화 ‘미몽’을 비롯해 ‘열녀문’ ‘연산군’ ‘하녀’ ‘검은 머리’ 등을 복원한 AZ웍스의 배재순 복원팀장. 부산=염희진 기자
16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우동에 있는 영상후반 작업시설 ‘AZ웍스’. 2층의 복원실에는 직원 3명이 각자 모니터 두 대를 켜 놓고 작업 중이었다. 이만희 감독이 1964년에 만든 영화 ‘검은 머리’의 뿌연 장면들이 몇 번의 손을 거치자 또렷하게 변해갔다. ‘검은 머리’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복원판으로 첫선을 보였다. 이날은 ‘검은 머리’의 최종 색 보정 작업 중이었다.

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한 배재순 팀장(31)은 필름 현상소에서 근무하다 후반작업업체인 HFR에서 고전영화 디지털 복원 일을 시작했다. 현존하는 최고(最古) 영화인 양주남 감독의 ‘미몽’(1936년)을 비롯해 신상옥 감독의 ‘열녀문’(1962년) ‘연산군’(1961년),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년) 등이 그의 손을 거쳤다. 이번 ‘검은 머리’는 HFR로부터 기술을 이전받은 AZ웍스의 첫 복원 작품이다.

한국영상자료원이 복원할 고전영화를 선정하면 복원팀은 원본 필름을 디지털 스캔한 뒤 생성된 파일을 컴퓨터 프로그램에 입력한다. 번쩍거림 스크래치 먼지 화면노이즈 등을 보정하는 시간은 작품당 3, 4개월. AZ웍스가 개발한 복원 소프트웨어 MJW 덕분에 작업 기간이 줄어들었다. MJW는 ‘막 지운다’는 우리말의 영어 이니셜에서 따온 이름이다.

별도 복원 프로그램에 파일을 입력하면 되는 것 같지만 필름이 수축되거나 부식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화면 자체가 일그러져 아무것도 알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의 손이 중요해지는 것도 이때부터다. ‘검은 머리’도 복원 전에는 녹물이 필름에 스며든 탓에 8분 동안 부식된 장면을 볼 수 없었다. ‘미몽’은 화면 전체가 가로로 줄이 그어져 복원에 애를 먹었던 작품이다. 배 팀장은 “손상된 장면의 움직임을 앞뒤 장면을 참조한 후 합성작업을 통해 되살리는 게 복원 작업 중 가장 고난도의 기술”이라고 말했다. 배 팀장은 “디지털도 영구 보관은 불가능해 저장 매체를 조금만 잘못 건드려도 파일이 손실될 수 있다”며 “그 정도로 복원작업은 끝나도 안심할 수 없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배 팀장이 걱정하는 게 따로 있다.

“‘원석’에 해당하는 필름의 수명은 영구적이지 않아요. 조금만 늦으면 복원은커녕 영영 볼 수 없는 고전영화가 아직도 많습니다.”

부산=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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