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헝클어짐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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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10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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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탈 속의 즐거움 안은경, 그림 제공 포털아트
일탈 속의 즐거움 안은경, 그림 제공 포털아트
방이 어지럽습니다. 책과 자잘한 물건이 제자리를 이탈해 엉뚱한 공간을 떠돕니다. 삶의 허물 같은 먼지도 곳곳에 쌓여 있습니다. 청소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몇 날을 망설이며 호흡 조절을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대단한 결단을 내리듯 팔을 걷어붙이고 대청소를 시작합니다. 청소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쓸고 닦는 행위를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본래적 의미는 흐트러지거나 어지러워진 상태를 원래대로 복원하는 일입니다. 요컨대 제자리 찾아주기.
청소를 끝내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단순하게 좋은 게 아니라 청량하고 상쾌해집니다. 청소를 자주 안 하는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날마다 청소하는 것과 몰아서 청소하는 것도 인생을 살아가는 나름의 스타일을 반영합니다. 날마다 청소를 하는 것은 일기를 쓰는 행위와 같고, 몰아서 한 번씩 청소하는 것은 고해를 하는 행위와 같습니다. 일기를 쓰고 난 뒤의 정갈한 마음가짐, 고해를 하고 난 뒤의 후련한 속내와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청소가 끝난 방 안에 앉아 있으면 인생을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 듭니다. 음악을 들으며 차를 한잔 마시노라면 마음의 평화가 절로 느껴집니다. 스스로 창출한 안식의 순간, 인간은 찰나처럼 천국을 경험합니다. 하지만 인생에 영원히 끝나는 청소는 없습니다. 아쉽고 안타깝지만 인간은 늘 청소하는 존재로 살아야 합니다. 복잡한 인간관계를 정리한다고 해서 인간관계가 완전히 종식되지 않고, 한 번의 실수를 반성한다고 해서 곧바로 해탈의 경지에 이르지도 않습니다.
쓰레기를 생산하지 않는 인생은 없습니다. 쓰레기를 생산하고 처리하는 과정으로 인생은 굴러갑니다. 어쩌면 블랙홀과 화이트홀의 방식으로 신(神)도 쓰레기를 생산하고 스스로 청소하는지 모릅니다. 삶의 가속력, 삶의 원심력, 삶의 마취력이 쓰레기를 생산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청소에 대한 의지만 있다면 쓰레기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점은 어지럽게 만들고 스스로 청소할 수 있는 자정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없다면 지구 전체가 단 며칠 사이에 쓰레기 천지가 됩니다. 그것이 있어 우리는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어 나갈 수 있습니다.
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인생이 뒤죽박죽될 때가 많습니다. 마음이 어지럽고 생활이 무질서하게 돌아갈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불안감에 시달리게 됩니다. 반듯하게 살고, 질서 있게 살아야 한다는 무의식적 강박 때문입니다. 하지만 헝클어짐의 미학을 아는 사람은 오히려 그것을 즐기며 긴장과 이완을 조절합니다. 헝클어짐으로부터 질서를 찾는 과정, 질서가 잡혔다고 생각될 때 다시 헝클어뜨릴 줄 아는 용기가 인생을 진화하게 만듭니다. “나는 어지럽힌다, 고로 청소한다”고 말해 보세요. 청소할 수 있으므로 어지럽힐 수 있는 자유가 삶의 영역을 확장하고 마음을 넉넉하게 만들어 줍니다. 자, 이제 시작해 보세요. 어지럽히거나 혹은 청소를 시작하거나.
박상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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