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동빈 기자의 자동차 이야기]잘나갈수록 긴장합시다

  • 입력 2009년 9월 29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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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간 국산 자동차의 성능과 품질 발전이 놀랍습니다. 1998년 당시 삼성자동차가 내놓은 ‘SM5’는 국내 자동차 소비자들에게 품질혁명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당시 기준으로는 부품의 조립상태나 마무리가 기존 국산차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탄탄했죠.

현대·기아자동차도 2004년 나온 ‘NF 쏘나타’부터 눈에 띄게 품질이 높아졌습니다. 삼성자동차에 자극을 받았다는 설도 있지만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2000년 미국을 방문했을 때 현대차에 대한 평가가 형편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뒤 품질에 ‘다걸기’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정 회장은 한국에 돌아와 회사의 모든 역량을 ‘품질’에 집중하라고 지시를 했고 이때 ‘품질경영’이라는 말도 나왔죠. 현대차그룹은 2000년부터 품질과 관련된 연구개발(R&D)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첫 번째 수혜자가 NF 쏘나타인 셈이죠. 이후 ‘TG 그랜저’, ‘제네시스’, 신형 ‘에쿠스’ 등은 나올 때마다 품질과 성능으로 화제가 됐습니다. 자주 품질 논란을 빚던 GM대우자동차도 최근 나온 ‘라세티 프리미어’와 신형 ‘마티즈’가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엔 조금씩 이상 기류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제가 자주 방문하는 자동차동호회에 들어가 보면 품질이나 무성의한 조립 문제로 불만을 터뜨리는 회원이 제법 있습니다. 현대차 ‘투싼ix’는 뒷 해치를 잡아주는 지지대(가스리프터) 2개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조립돼 있는 사진이 올라왔습니다.

미국에서 자동차 관련 사업을 하는 회원에 따르면 현대차 ‘제네시스 쿠페’는 퓨즈 박스에 표시돼 있는 퓨즈의 좌우 배선이 바뀌어 있고 기아차 ‘쏘울’은 머플러를 고정하는 핀이 순서가 바뀌어 있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현대·기아차의 품질관리에 뭔가 문제가 생긴 듯합니다. 그렇다고 다른 브랜드의 사정도 그에 비해 좋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라세티 프리미어는 일부 차량의 문에서 물이 새는 문제가 발생했고 르노삼성차의 ‘SM3’는 브레이크 램프에 불이 들어오지 않아 열어봤더니 전기 커넥터가 뽑힌 채 출고되기도 했답니다. 국내 자동차회사들이 어느 정도 품질을 인정받으면서 긴장을 늦춘 것은 아닌지 걱정되는 대목입니다.

최근 인기 차종들은 2, 3개월 기다려야 받을 정도로 생산시설을 풀가동하면서 근로자들의 피로도 누적됐겠지만 그것은 회사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지 소비자들이 이해해줘야 할 부분은 아닙니다. 품질을 인정받고 브랜드의 가치를 올리는 것은 돈과 시간, 노력이 많이 들어가는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신뢰를 잃어버리는 것은 한순간입니다. 최근 세계시장에서 좋은 실적을 거두고 있는 한국 자동차회사들이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느슨해진 곳은 없는지 살펴봐야 할 때입니다.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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