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길]<94>‘愛人敬天’ 도전 40년

  • 입력 2009년 9월 25일 02시 51분


코멘트
애경유지 영등포 공장(현 AK플라자 구로본점)에서 1970년대 중반 민방위 대원들이 화재 진압 훈련을 하는 모습. 영등포 공장 화재는 안전의 중요성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임직원의 단합을 다지는 계기가 됐다. 사진 제공 애경그룹
애경유지 영등포 공장(현 AK플라자 구로본점)에서 1970년대 중반 민방위 대원들이 화재 진압 훈련을 하는 모습. 영등포 공장 화재는 안전의 중요성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임직원의 단합을 다지는 계기가 됐다. 사진 제공 애경그룹
<17> 임금인상으로 화재 복구하다

진화작업 헌신한 직원들에 감동
한해 두번 파격적 임금인상 보답
사기 높아져 매출 신장 계기로

화재를 수습한 직후 회사는 적지 않은 손실을 봤다. 그러나 자신의 집에 불이 났을 때보다 더 슬퍼하고 자신의 몸을 돌보기보다 불을 끄기 위해 몸을 던진 직원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하나가 된 마음이 타버린 공장보다 내 마음을 더 울렸다. 화재가 나자 공장 식구뿐 아니라 TV를 보고 집 또는 다른 곳에 있던 직원까지 현장으로 뛰어와 진화 작업에 나섰다. 덕분에 화재가 난 지 1시간 반이라는 빠른 시간 안에 불길을 잡을 수 있었다. 영등포 공장 정문에 세워진 남편의 흉상을 비롯해 창고를 제외한 다른 시설물이 피해를 보지 않았던 것도 직원들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이었다.

나로서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임직원에게 특별상여금을 지급하고 10월 1일에는 계획에 없이 임금을 인상했다. 화재가 나기 3개월 전인 4월의 임금을 27% 인상한 뒤 같은 해 또다시 임금을 올린 것이다. 화재 나흘 후인 7월 12일 영등포 공장에서 열린 남편의 추도식에서 나는 직원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화재 예방에 만전을 기하자고 당부했다. 다음은 추도식 연설의 일부.

“제5창고에서 발생한 돌연한 화재는 우리에게 슬픔과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날 보여준 직원 여러분의 용기 있는 행동과 협동정신은 슬픔을 잊게 해 준 감격의 드라마였습니다. 잿더미로 변한 회사 재산에 대한 가슴 아픔은 저버릴 수 없는 것이지만 이와 같은 시련 속에서 애경의 힘과 마음, 직원의 애사심을 일깨울 수 있었던 것은 실로 값진 수확이었습니다. 오로지 회사의 재산을 보호하겠다는 일념으로 불길 속으로 뛰어든 용감한 현장 종업원들, 위급한 상황에서도 질서유지를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준 사원들, 화재소식을 듣고 단숨에 달려온 전국 각지의 직원들과 거래처 관계자들, 그리고 같이 밤을 지새우며 사후대책을 걱정해 주던 계열사 임직원들. 이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성원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 벅찬 감격에 눈시울이 절로 뜨거워집니다.

그날 나는 여러분의 의지와 용기 앞에 힘없이 스러져가는 불길에서 또 다른 불꽃이 밝게 타 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화재현장에서 새로운 애경, 힘찬 애경의 승리를 예견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이 회사의 진정한 주인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며 여러분의 잠재능력과 무한한 가능성의 애경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중략)…회사는 여러분의 노고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밝힌 바와 같이 8월부터는 전 종업원에게 중식이 제공될 것이며 또한 올해 안으로 임금을 재조정하여 조금이나마 기쁨을 안겨줄 예정입니다. 애경은 꿈이 있는 기업, 무한한 가능성의 기업입니다. 애경유지의 창립이 이 나라 화학공업사의 첫 페이지를 기록했듯 그 나머지 장도 우리 힘으로 찬란하게 장식합시다.”

나는 또 화재 현장에서 특별히 화재 진화에 공이 큰 공로자 9명에게 상장과 부상을 수여했다. 일부 사원은 임금을 인상하고 점심 식사 지원을 늘리겠다는 내 뜻에 대해 의아해 하기도 했다. 화재로 회사의 손실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재정상황을 잘 아는 직원일수록 그랬다. 기획실 직원은 화재 직후 조회 시간에 “회사의 이익구조를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이 어려운 시기에 취한 급료 인상과 중식 제공 등 사장님의 조치가 적절한 조치였는지 반문할 정도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조치로 직원의 사기가 높아지면서 사세는 오히려 전년보다 확장됐다. 1978년 매출이 292억9200만 원으로 1977년(221억7300만 원)보다 32.1% 늘어 1977년의 전년 대비 매출 증가율(29.2%)을 상회했다.

나는 영등포 공장 화재 사건을 통해 경영자와 직원의 마음이 서로 통할 때 기업의 발전이 가능하다는 점을 새삼 깨달았다. 직원의 마음을 얻으려면 먼저 경영자가 직원을 믿고 마음을 열어야 한다. 나는 창업주를 잃고 선장이 바뀐 애경호를 떠나지 않고 함께 지원해 준 임직원 덕분에 오늘의 애경이 있다고 믿는다.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