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마당]영리병원 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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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4월 30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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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신동아 5월호 인터뷰를 통해 “영리병원은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비급여 진료를 맡는 방식으로 가자는 거다”라고 말했다(본보 27일자 A12면). 윤 장관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유지하겠다고 설명했지만 일부 보건 의료단체는 영리병원을 허용하면 의료계가 비급여 진료를 선호하므로 장기적으로는 당연지정제가 와해된다고 주장한다. 영리병원이 생기면 의료 서비스의 질이 높아질까 낮아질까. 의료비 부담이나 의료산업 발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병원 일자리 만들고 서비스 경쟁
현행 의료법은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등 개인 의료인이 영리 목적으로 병원을 설립하고 운영하도록 허용하는 반면에 의료인은 물론 일반인이 상법상 회사(영리법인)를 조직하여 병원을 개설하는 일은 금지한다. 의료시장에 대한 차별적 진입제한 규제는 의료서비스산업의 혁신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혁파해야 할 개혁과제이다.
첫째, 의료인에 한정하여 투자자본을 조달해야 하는 비합리적 규제로 인해 대다수 중소병원은 투자재원 조달이 어렵다. 이에 따라 과다한 부채 부담에 허덕이며 영세성을 못 면하고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원하는 국민의 욕구를 제대로 채워주지 못한다. 다수의 투자자가 힘을 모은 경쟁력 있는 시민주주 병원의 등장은 산업경쟁력을 강화하고 양질의 의료서비스 제공기반을 확충하는 데 기여한다. 투자가 활성화되면서 수많은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둘째, 다양한 경제 주체가 참여하는 새 형태의 병원이 등장하면 종전의 독과점적 경쟁과는 질적으로 다른, 소비자를 위한 치열한 경쟁을 촉발한다. 의료서비스의 특성을 감안해도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공공 규제의 틀 안에서 경쟁이 활성화되면 소비자 후생은 증대된다. 경쟁의 촉진은 결국 의료소비자가 원하는 양질의 서비스를 더욱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는 병원이 생존하고 발전할 경쟁적 산업구조를 만든다.
개혁안이 참여정부 이래 표류하는 이유는 의료의 비영리성이라는 막연한 환상에 기초한 이데올로기적 반대에 발목이 잡혀 있어서다. 의료공급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한국의 민간병원은 정부의 재정지원, 기부금 등 별도의 수입이 거의 없는 관계로 생존을 위해 필연적으로 영리 의료활동을 할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영리성 때문에 영리법인의 의료업을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현실의 왜곡이거나 이념적 편견에 불과하다.
국민건강보험제도를 위협하여 의료를 민영화한다는 우려도 터무니없다. 현행 건강보험의 틀 안에서 영리법인을 허용하면 되므로 건강보장의 틀은 전혀 바꿀 이유가 없다. 국민건강보험의 강화와 취약계층 배려의 확대는 정부도 이미 수차례 공언한 바 있는 우리 시대의 굳건한 가치이다.
영리법인 병원을 허용하면 진료비가 폭등한다는 주장 역시 크게 과장돼 있다. 국민건강보험의 틀 안에서 영리법인 병원을 허용하면 정부 및 보험자가 정한 건강보험 수가를 다른 병원과 동일하게 적용하므로 진료비는 더 오를 수 없다.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도 의료서비스의 질과 시장 경쟁에 의해 조정되므로 진료비의 우려할 만한 상승은 불가능하다.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개혁을 통해 의료서비스산업이 선진화되는 계기를 마련하길 진심으로 기대한다.
이기효 인제대 보건대학원장

돈벌이 병원, 진료비 큰폭 올릴것
의료는 모든 국민에게 제도적으로 제공하는 방향이 시장에서 개인의 구매력에 따라 구입토록 하는 일보다 사회 전체적 편익이 훨씬 큰 경제학적 특징을 가진다. 유럽 복지국가는 이런 원칙에 따라 공적 방식으로 국가의료제도를 운영한다. 자본과 시장의 원리에 따라 시장주의 의료제도를 운영하는 미국은 거시적 효율성, 의료 이용의 형평성, 의료의 보편적 질에서 선진국 중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미국의 시장주의 의료 모델은 우리의 미래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국민의료비 중 공공재정의 비율이 53%에 불과하고 전체 병상 중 공공병상의 비율이 10%인 데 비해 유럽 선진국은 공공 의료재정의 비율이 80%를 넘고 공공병상의 비율이 60∼95%에 이른다. 우리나라 의료제도가 나아갈 길은 유럽의 장점을 배워 의료재정과 공급의 공공성 수준을 대폭 높이는 일이다. 현 정부는 유럽이 아닌 시장만능주의 미국 의료제도를 따르는 잘못된 길로 가려 한다. 내국인 영리법인 병원의 도입과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가 그것이다.
미국의 경험적 연구에 의하면 영리법인 병원은 비영리병원에 비해 의료의 질이 유의하게 낮았고, 고용도 양과 질 모두에서 불리했으며, 의료비가 훨씬 높았다. 돈벌이 목적으로 설립된 주식회사 병원에서 의료비가 높은 현상은 상식에도 잘 부합한다. 그러므로 내국인 영리법인 병원의 도입을 통해 의료의 질을 높이고 고용을 창출하겠다는 기획재정부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 또 정부가 추진하려는 외국인 환자 유치는 현행 비영리 제도하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므로 영리법인 병원을 도입할 이유는 전혀 없다.
정부는 영리법인 병원에도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적용하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국민을 안심시키려 하나 이는 진실을 은폐하는 것이다. 공적 의료비 조달제도인 국민건강보험이 돈벌이 자체가 목적인 영리법인 병원을 당연지정함으로써 영리병원의 돈벌이에 이용되는 일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 이런 건강보험 당연지정은 오히려 영리법인 의료기관의 무분별한 설립과 확산을 촉진하므로 국가의료제도의 공공성을 해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잘나가는 영리법인 병원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당연지정을 벗어나려 할 텐데 헌법소원을 내면 논리적으로 그들이 승소한다. 결국 국민이 속는 셈이다.
현재 의료비의 약 60%는 국민건강보험이 지불하고 최대 40%까지는 민간의료보험의 몫인데 우리나라는 의료비를 둘러싸고 국민건강보험과 민간의료보험이 경쟁하는 구도다. 영리법인 병원과의 자유로운 계약에 따라 민간의료보험은 급성장하고 국민건강보험은 위축될 것이 자명하다. 이후 닥쳐올 중산층과 서민의 의료 불안과 고통은 영화 ‘식코’에서 본 바와 같을 것이다.
이상이 제주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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