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폴 케네디]모든 상업은 런던으로 통한다

  • 입력 2008년 7월 4일 02시 58분


영국 런던에 갈 기회가 있으면 볼일을 마친 뒤 템스 강을 따라 배를 타고 그리니치천문대를 가보라. 헨델의 ‘수상 음악’을 흥얼거리면서 언덕을 걸어 오르다 보면 자오선을 만난다. 자오선 위에서 두 발을 벌리면 한쪽 발은 서반구에, 다른 발은 동반구에 서 있게 된다. 서쪽으로 가면 시간을 벌고 동쪽으로 가면 시간을 잃는다.

필자는 미국의 신용카드사 마스터카드가 최근 발표한 ‘기업활동 하기 좋은 상업중심지 순위’에서 런던을 1위로 선정했을 때 자오선을 떠올렸다. 세계 75개 주요 도시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런던에 이어 미국 뉴욕, 일본 도쿄, 싱가포르, 미국 시카고, 홍콩, 프랑스 파리, 독일 프랑크푸르트, 한국 서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등이 10위권에 올랐다. 중국 상하이는 24위, 인도 뭄바이는 48위, 러시아 모스크바는 51위였다.

이런 순위는 종종 주관적인 기준에 기초해 작성되므로 유의해서 봐야 한다. 예컨대 마스터카드 조사 항목에 포함된 ‘지식 창조’, ‘거주 적합성’ 등을 어떻게 점수로 매길 수 있겠는가. 물론 비교하기 쉬운 항목도 많다. 상거래 규모나 금융회사 보유 개수 등이다. 여러 세대에 걸친 국공채, 민간기업 주식, 보험 등 각종 금융상품 거래 경험 덕분에 런던은 다른 도시에 비해 경쟁력이 높은 금융시장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사실만으로는 런던이 1위에 오른 이유가 제대로 설명이 안 된다.

상위 순위에 오른 도시들을 보자. 뉴욕(2위)과 시카고(5위)는 물론이고 싱가포르(4위), 홍콩(6위) 등 6위권 내 5개 도시가 영어를 사용하는 지역에 있다. 세계 모든 나라가 교역에 대부분 영어를 사용한다. 미국 골드만삭스가 본사 일부 부서를 다른 도시가 아니라 런던으로 이전하기로 한 이유를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다. 서울이나 파리로 이전한다면 사업하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언어와 문화는 그만큼 중요한 요소이다.

글로벌 금융 중심지가 영어사용권일 수밖에 없다고 해도 왜 시카고나 싱가포르는 안 될까. 여기에서 그리니치천문대에 위치한 자오선으로 되돌아가 보자. 세계지도를 펼치고 가위로 북위 60도 북쪽과 남위 40도 남쪽 부분을 오려내 보자. 뉴질랜드 국민이나 에스키모 등 일부를 제외하면 (잘려 나간 부분은)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지역이다. 또다시 동경 150도와 서경 130도 사이 부분을 잘라내자. 이곳 역시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다. (런던을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일본과 호주, 서쪽으로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정도 사이에 지구상의 대부분의 사람이 살고 있다. 이 지역에 시장이 있고 교역이 있다.

이번에는 일부 잘려 나간 세계지도를 보면서 지역에 따라 밤과 낮이 어떻게 바뀌는지 생각해 보자. 시차가 다른 지역이 상거래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따져 보면 경도상으로 포르투갈 리스본과 터키 이스탄불 사이 지역이 교역하기에 유리하다. 이 지역 도시들은 아시아 도시들과도, 또한 북미 도시들과도 거래를 할 수 있다. 영어라는 요인을 다시 생각해 보자. ‘결론은 런던’이다.

다른 도시들이 런던의 아성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프랑크푸르트, 두바이 등이 나름대로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 런던의 지위를 넘보고 있다. 그러나 자오선이 위치한 곳, 영어를 사용하는 곳, 금융시장의 경쟁력 등을 고루 갖춘 런던만의 강점을 고려해 보면 내년에도 런던이 1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폴 케네디 미국 예일대 교수·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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