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문화&사람]<1>파주 인물박물관 구삼본관장

  • 입력 2007년 1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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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의 향기’ 그득

고종 황제의 무표정한 눈빛에는 나라를 빼앗긴 무력함이, 김구 선생의 자애로운 미소에는 독립을 향한 불굴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입술을 굳게 다문 박정희 전 대통령 옆에는 웃는 모습이 보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일본군위안부 할머니가 자리 잡고 있었다.

경기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 예술인마을의 ‘93뮤지엄’에는 이렇게 사람들의 표정을 통해 읽어 보는 역사가 있다.

이곳에 전시된 인물화는 1000여 점. 조선 시대 내시와 중국 대륙을 호령했던 황제, 중세 유럽의 귀족부인 등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은 인물들이 동거하고 있다.

이곳의 구삼본(52) 관장은 “사람들의 얼굴이 좋아 30년간 인물화만 사 모으다 보니 인물화 박물관이 됐다”면서 “젊은 시절 미술에 대한 꿈을 이 박물관을 통해 이뤘다”고 말했다.

○ ‘표정’이 있는 미술관

93뮤지엄은 고상하거나 어렵지 않다.

신문에서 자주 보던 얼굴이 있고, 역사책에서 이름을 본 적 있는 사람들의 인물화가 걸려 있다. 그림 옆 해설을 읽으면 당시의 시대상과 역사적 배경을 알 수 있다.

한가롭게 자세를 취한 시골 노인의 인물화는 ‘정부수매양곡’ 도장이 찍힌 쌀자루 위에 그려졌다. 외환위기 이후 침체됐던 한국 사회에 공 하나로 희망을 던져줬던 골프선수 박세리, 야구선수 박찬호의 얼굴도 2층 전시실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

1층에 들어서면 군위안부 할머니 15명의 초상화가 눈길을 끈다. 2층에는 조선 시대 초상화실, 에로틱 아트실이 있다. 국내 유일한 내시 영정 ‘김새신 초상화’도 이곳에 걸려 있다.

에로틱 아트실에는 조선 말기의 성 풍속을 보여 주는 유머 가득한 풍속화와 중국, 일본의 춘화 등이 전시돼 있어 성인 관람객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3층에는 현대의 인물들이 관객을 반긴다.

○ “사람의 얼굴이 좋았다”

구 관장은 고등학생 시절 미술반 활동을 했지만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할 수는 없었다.

집안의 반대와 가난 탓에 축산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기 위해 사람의 얼굴을 유심히 뜯어보는 습관은 평생을 갔다.

구 관장이 1981년 취직해 A대기업 회장 비서실에서 받은 첫 월급은 24만 원. 이 중 20만 원을 주고 인물화를 산 게 이 박물관의 출발이었다. 그는 “당시에는 풍경화, 추상화가 인기를 끌었고 인물화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우연히 산 재건축 아파트 값이 폭등하자 그는 아파트를 팔아 화랑을 만들었고 돈이 생길 때마다 인물화를 사들였다. 좋은 인물화를 가진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림을 팔라고 부탁하는 것이 일이었다. 해외여행 때는 골동품 거리를 찾아다니며 인물화를 구입해 들여왔다.

최근 주목하고 있는 곳은 베트남. 프랑스 식민지 시절 훌륭한 인물화가가 다수 배출됐기 때문이다. 1990년대부터 베트남 국민 작가로 꼽히는 ‘부이쑤언파이’의 작품을 대량 구입해 올해 9월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 주변 가볼 만한 곳

이 뮤지엄이 있는 헤이리는 50만 m²(약 15만 평)에 370여 명의 예술인이 주거와 창작을 병행하는 곳이다. 자유로 성동 나들목에서 빠져나와 성동 사거리에서 좌회전한 뒤 헤이리마을 3번 입구로 진입하면 93뮤지엄이 보인다.

구 관장은 전통 옹기를 전시한 ‘한향림 갤러리’와 황인용의 음악 카페 ‘카메라타’, 한길사의 ‘북하우스’를 이 지역에서 가 볼 만한 곳으로 추천했다.

헤이리 주변에는 영어마을, 자동차극장, 통일전망대 등도 있어 드라이브를 겸한 주말 나들이 코스로 좋다.

파주=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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