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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기난사로 숨진 32인을 추모합니다” 美전역 애도 물결

입력 2007-04-19 03:07업데이트 2009-09-27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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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어머니 쏙 빼닮은 ‘미소의 여왕’

동물을 좋아해 수의사 꿈꾸던 여대생

‘생체역학 연구 톱 5’ 꼽을 세계적 석학

미국 버지니아공대 총기 난사 사건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신원이 밝혀지고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지면서 미국 언론 웹사이트와 개인 블로그에는 추모 글이 줄을 이었다.

그날 아침 기숙사에서 학생들 다툼에만 끼어들지 않았다면 라이언 클라크(22) 씨는 올여름 장애어린이들을 위한 캠프에 갈 수 있었을 것이다.

심리학 생물학 영문학을 동시에 전공하는 클라크 씨는 신경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정신질환자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 꿈이었다. 그는 16일 오전 위기에 처한 여자 신입생 에밀리 힐셔 씨를 외면 않고 도우려다 범인의 총탄에 쓰러졌다.

용의자의 9mm 글록19 권총은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위해 고단한 유학 생활을 꾸려가던 유학생들을 비켜가지 않았다. 아버지가 차를 팔아 마련해 준 자금으로 유학 온 인도네시아 청년 파르타히 룸반토루안(34) 씨도, 식당일을 하는 어머니의 뒷바라지로 유학 중이던 페루인 다니엘 쿠에바(21·국제문제 전공) 씨도 ‘아메리칸 드림’을 접어야 했다.

채 피어 보지도 못하고 스러져 간 젊은 학생들과 전도유망한 교수들의 죽음에 지인들은 물론 생면부지의 누리꾼들도 그들의 영면(永眠)을 기원하는 글을 남겼다.

미국 수사당국에 따르면 희생자의 국적은 미국 인도 인도네시아 이집트 독일 푸에르토리코 페루 한국 등 8개국이다.

한국인 사상자는 이번 사건 용의자 조승희(영문학 전공·4학년) 씨와 부상한 박창민(토목공학전공 석사과정) 씨 등 2명이다. 노리스홀에서 숨진 여자 신입생 메리 리드 씨는 어머니가 한국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너의 짧은 인생은 오래 기억될 거야”

이번 사건의 첫 번째 희생자인 수의학과 신입생 에밀리 힐셔 씨는 올해 19세. 버지니아 주 우드빌의 고향 친구들은 힐셔 씨의 꿈이 말을 돌보는 수의사였다고 말했다. 6년 전 그녀와 승마클럽에서 만나 친구가 된 세라 씨는 “가족과 친구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사랑했던 에밀리라는 촛불이 너무 빨리 꺼졌다”며 애석해했다.

노리스홀 211호실에서 독일어 수업을 듣다 변을 당한 메리 씨는 가느다란 눈과 수줍은 입매가 한국인 같다. 어머니 김선연 씨를 닮아서다. 아버지는 주한미군 공군 출신 미국인 피터 리드 씨. 메리 씨의 고모는 “어머니는 아직도 메리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떠 준 목도리를 두르고 다니신다”며 “메리는 참한 아이였다”고 전했다.

5남매 중 장녀인 메리 씨는 뉴저지 주 집에서 가까운 조지메이슨대를 가려다 버지니아공대를 택했다. 고교 시절에는 클라리넷을 연주했고 밴드부에서는 예쁜 미소로 ‘베스트 스마일’상을 받기도 했다. 과자나 빵도 곧잘 만들었던 그녀를 친구들은 ‘천상의 과자’로 불렀다. 그녀의 꿈은 초등학교 교사가 되는 것이었다.

목이 길고 아름다웠던 신입생 리마 사마하(18) 양. 용의자의 집과 가까운 곳에 살았기 때문에 두 사람이 가까운 사이였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가족은 부인했다. 춤을 잘 추었던 그녀는 고교 시절 ‘지붕 위의 바이올린’ 등 여러 작품에 출연해 온갖 무용상을 휩쓸었다. 연극에도 소질을 보여 고교 시절 5000달러의 장학금도 받았다. 친구들은 사마하 양의 공연 실황이 담긴 비디오테이프를 함께 보며 슬픔을 달래고 있다.

도시공학과 졸업반 재릿 레인(22) 씨는 내로스고교 졸업식 땐 고별사를 읽었고 대학 시절엔 특별 장학생이었다. 하지만 로버트 스텀프 내로스고교 교장은 그를 만능 스포츠맨으로 기억한다. “한번은 농구 게임이 끝난 뒤 코치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했지. ‘코치님, 우리 팀이 잘 하려면 제가 어떻게 해야 하죠?’라고. 무엇이든 열심이었던 너였는데….” 지난달 22일은 그의 스물두 번째 생일이었다.

○식당 아르바이트 중국계 우등생 참변

버지니아공대의 비극은 수많은 유학생의 ‘아메리칸 드림’도 앗아갔다.

페루 청년 쿠에바 씨가 2002년 미국에 왔을 때 그의 꿈은 대학을 졸업하는 것이었다. 페루에서 교사 생활을 하던 어머니는 아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미국식당과 세탁소에서 일을 했다. 아버지는 페루에서 학비를 벌어 보내는 ‘기러기 가족’이다.

쿠에바 씨는 부모의 희망을 저버리지 않고 고교, 마이애미와 버지니아의 칼리지를 거쳐 버지니아공대생이 됐다.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를 잘하는 그는 여름방학을 이용해 인턴으로 일하려고 워싱턴의 프랑스와 이탈리아 대사관에 면접을 보러 다니던 중이었다.

함께 유학 온 후고 킨테로 씨는 친구의 죽음이 실감나지 않는다고 했다. “다니얼과 나는 가난하게 자랐다. 아메리칸 드림을 성취하려고 여기까지 왔는데….”

컴퓨터공학과 헨리 리 씨. 이름 때문에 한국계라는 추정이 나왔지만 중국이 고향이다. 초등학생 시절 부모를 따라 이민 왔다. 낯선 땅에서 영어 한마디 못하고 새 생활을 시작했지만 버지니아 주 윌리엄플레밍고교를 우등으로 졸업했다. 학급 친구들은 우등생인 리 씨 덕분에 패스트푸드 업체 버거킹에서 무료 쿠폰을 받았다.

룸반토루안 씨는 버지니아공대에 재학 중인 16명의 인도네시아 유학생 중 한 명. 도시공학과 박사과정에서 3년째 공부 중이었다. 초등학생 때 어머니를 여의고 예비역 군인인 아버지는 아들을 유학 보내기 위해 재산을 팔았다. 그는 미국 대학 교수가 되겠다는 꿈을 접고 고인이 된 어머니 곁에 묻히게 됐다.

○“최고의 아빠 잃었다” 가족들 망연

케빈 그라나타(46) 공학과 교수. 회사원처럼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단정히 맨 뒤 아래는 청바지에 카우보이부츠를 신는 괴짜였지만 바이오메카닉스 분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뛰어난 연구자였다.

2003년 버지니아공대로 옮겨오기 전까지 재직했던 버지니아대의 한 동료는 “위대한 과학자 한 명을 잃었다. 그는 유능했고 겸손했다”고 전했다. 그라나타 교수가 재직했던 연구소 동료 브래드 베넷 박사는 “케빈은 연구소에 가장 일찍 나와 가장 늦게 퇴근하는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동료 교수들은 “세계적인 연구자”라고 평가했고 그의 아내와 세 자녀는 “최고 아빠였다”고 슬퍼했다.

이민자 출신 학생의 총격에 인도 캐나다 루마니아 등 다양한 국적의 교수들도 희생됐다.

도시환경공학과 G V 로가나탄 교수는 인도 남부 타밀나두가 고향이다. 칸푸르 인도 공과대를 졸업한 뒤 1982년 미국으로 유학해 퍼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건 당일 도시공학 강의 도중 총격을 받고는 아내와 두 딸을 남기고 세상을 떴다. 그의 어머니는 “사고가 나기 이틀 전에 안부 전화를 해 2, 3년 후 귀국하겠다고 했다”며 망연자실했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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