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플러스]한 뜸 한 뜸 정성어린 손길에 시름도 ‘사르르’

  • 입력 2007년 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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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서울 종로구 창신1동 금호팔레스빌딩 1801호 ‘뜸사랑 동산봉사실’에서 자원봉사자들인 ‘뜸 요법사’들이 노인들에게 침과 뜸 치료를 해주고 있다. 침과 뜸은 고령화 사회에 국민건강을 지키면서 의료비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대안이란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정동우 사회복지전문기자
2일 서울 종로구 창신1동 금호팔레스빌딩 1801호 ‘뜸사랑 동산봉사실’에서 자원봉사자들인 ‘뜸 요법사’들이 노인들에게 침과 뜸 치료를 해주고 있다. 침과 뜸은 고령화 사회에 국민건강을 지키면서 의료비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대안이란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정동우 사회복지전문기자
《“처음에는 관절이 아파 잘 걷지도 못했는데 지금은 계단도 잘 내려갑니다. 우리 같은 노인들에게는 이런 침과 뜸 치료가 가장 빠르고 확실하지요.” 2일 서울 종로구 창신1동 금호팔레스빌딩 1801호 ‘뜸사랑 동산봉사실’에서 만난 김귀한(75·서울 강북구 미아5동) 씨의 말이다. 김 씨는 어깨와 목의 통증, 소화불량, 관절통 등으로 고생하다 지난해 3월 노인들에게 무료로 침과 뜸 봉사를 하는 이곳을 우연히 알게 된 후 정기적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

2년 전부터 다니고 있는 김현순(88·여·서울 종로구 숭인1동) 씨도 “이곳을 몰랐더라면 고생이 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전형적인 퇴행성 노화증세로 허리가 구부러지고 다리에 마비증세가 와서 잘 걷지 못하는 상태다. 노화증세가 워낙 심해 완치할 수는 없지만 침 뜸 치료 후에는 한동안 증세가 완화되기 때문에 계속 찾는다는 것이다.

이날 대기실에는 60대 이상 노인 30여 명이 차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침대 12개가 마련된 진료실에서는 침과 뜸 치료가 진행되고 있었다. 환자 1명당 2명꼴로 흰 가운을 입고 치료에 열중하고 있는 ‘의료진’은 모두 ‘뜸 요법사’들이다.

대부분 은퇴자이거나 가정주부, 자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로 모두 무보수 자원봉사로 침 뜸 치료를 하고 있다. 이들은 정통 침 뜸 교육원인 ‘뜸사랑교육원’에서 자비로 1년 이상의 교육을 받고 시험을 통해 ‘뜸 요법사’ 자격을 취득했다. 뜸 요법사는 뜸사랑교육원에서 부여하는 일종의 민간 자격증.

이 봉사실에서는 오전 오후 40여 명씩 하루 평균 80여 명의 노인 등이 침과 뜸 치료를 받고 있다.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은 65세 이상의 노인이나 기초생활수급자, 장애인, 외국인노동자 등으로 제한되어 있다. 치료 희망자가 너무 많아 자격을 정해놓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음 치료를 받을 때까지 보름 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변형식(69·경기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씨는 대기업 상무로 퇴직한 엔지니어 출신이다. 그는 은퇴 후 뜸사랑교육원에서 1년간 교육을 받은 후 점차 침과 뜸의 오묘한 세계에 빠져들어 이제는 이 교육원에서 침 뜸을 가르치면서 자원봉사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그는 당뇨와 뇌중풍도 침과 뜸으로 고칠 수 있다고 단언했다.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1년 반 정도 뜸으로 체질을 개선해 주면서 꾸준히 치료하면 완치도 가능하다는 것.

자원봉사자 중에는 MBC 라디오의 ‘싱글벙글 쇼’의 작가를 23년째 해오고 있는 박경덕(49) 씨와 영화감독 장영일(55) 씨 등도 있었다. 박 씨는 1년간의 침 뜸 교육을 수료하고 9개월째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주로 토 일요일에만 봉사를 하지만 이날은 새해 첫 치료라 오후 시간을 냈다고 소개했다.

2년째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는 장 씨는 “침 뜸 학습을 통해 몸의 경락과 기의 순환구조를 알게 됐다”며 “침과 뜸은 가장 값싸고 효과가 빠르며 손쉬운 전통 의료로 우리 사회가 지켜나가야 할 무형의 재산”이라고 말했다.

그는 “통증에 시달리던 노인들이 ‘고통이 사라지고 거동이 쉬워졌다’고 좋아할 때 희열을 느낀다”고 말했다.

현재 전국에는 모두 26곳의 무료 침 뜸 봉사실이 운영되고 있다. 이들 봉사실을 통해 치료를 받은 사람들은 95% 이상이 65세 이상의 노인들이다. 2005년의 경우 연인원 10만여 명이 치료를 받았고 지난해에는 12만 명이나 됐다는 것이다.

뜸사랑봉사원은 ‘정통침구교육원’ 김남수(92·서울 동대문구 청량리2동) 원장이 운영하는 침 뜸 봉사단체. 사라져 가는 침과 뜸을 보급해 그 전통의술의 맥을 유지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이 교육원에서는 초급 3개월, 중급 3개월, 고급 6개월 과정의 침 뜸 교육을 하고 있다. 교습비는 전 과정을 끝내는 데 210만 원. 그동안 2400여 명이 과정을 마쳤고 이 중 1100명이 뜸 요법사 자격을 얻었다. 이들 중 다수가 전국의 봉사실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봉사실 운영에는 별로 돈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 교육원 측의 설명이다. 장소는 관공서, 복지관, 시민단체 등에서 무료로 제공하고 침 뜸 봉사는 자원봉사로 해결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많은 사람이 치료를 받다 보니 당연히 의료법 위반(무면허 진료행위)과 과외교습법 위반(침 뜸 교육) 등의 고발이 들어온다는 것.

김 씨는 지금까지 7번이나 고발을 당했으나 모두 기소유예나 무혐의 등의 처분을 받았다. 검찰이 고발사건을 수사했으나 모든 진료가 돈을 받지 않는 자원봉사로 이루어지고 있는 데다 노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에 내려진 결정이었다.

김 씨는 “노인질환은 병원균에 의한 질병이나 수술을 요하는 것보다는 노화로 인해 발생하는 퇴행성 질환이나 신경통 등이 많기 때문에 침이나 뜸이 더 유용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침 뜸은 부작용이 거의 없고 저렴한 데다 뜸의 경우 자가 치료가 가능해 노인에게 권할 만하다”며 “5000원짜리 뜸 한 통만 사면 혼자서 4∼6개월을 사용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정동우 사회복지 전문기자 forum@donga.com

■ 사라진 전통 ‘침구사제’

사단법인 대한침구사협회(회장 신태호)에 따르면 자격을 갖춘 침구사는 전국에 38명밖에 안 되고 평균 연령은 77세나 된다.

침구사제도는 1962년 당시 정권이 ‘야만적이며 검증받지 않은 의술’이라는 이유로 의료법 개정과 함께 폐지했다.

이 때문에 폐지 이전에 국가에서 침구사 자격을 받은 사람들만 자격이 있는 것이다. 당시 전국 11개 관인침구학원에서 5000여 명이 2년째 교육을 받고 있었으나 정부의 조치로 졸지에 무자격자가 됐다.

그 후 중국과 미국 등지에서 침구의 유용성과 과학성이 입증된 데다 값싸고 간편하고 효과가 빠른 전통의술이라는 점을 들어 침구사제도를 부활시켜 국민의료로 키워야 한다는 주장이 여러 차례 제기됐다.

그러나 양한방 의료계의 반대와 보건복지부의 부정적 방침 때문에 아직도 입법화되지 않고 있다.

미국의 경우 식품의약국(FDA)이 1996년 침구를 유용한 치료법으로 인정한 후 40개 주에서 침구치료를 인정하는 입법이 이뤄졌다. 호주의 빅토리아 주와 멕시코 파나마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에서 합법적 지위를 얻었고 프랑스 영국 오스트리아 등 유럽 국가에서도 정부의 인정을 받았다.

중국에는 중의병원과 중서(中西) 결합병원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서양의학종합병원에도 중의침구과가 설치돼 있다.

침구사협회 신 회장은 “중국은 물론 서양에서도 점차 공인하고 있는 침과 뜸을 우리나라만 법적 근거가 없어 점차 맥이 끊어져 가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라며 “특히 고령화 사회에서 침구는 국민건강을 지키면서 의료비 부담을 줄일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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