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의&joy]장성 축령산 편백나무 숲 기행

  • 입력 2007년 1월 6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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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천연의 사원’이요, 나무는 그 속에서 묵언정진하는 수도승이다. 나무는 사람이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화를 내지 않는다. 온갖 칭찬을 늘어놓아도 으스대지 않는다. 말 한마디 안 하면서, 모든 말을 다한다. 사람은 그 많은 말을 하면서도, 늘 ‘말이 안 통한다’고 투덜댄다. 장성=박영철 기자
산은 ‘천연의 사원’이요, 나무는 그 속에서 묵언정진하는 수도승이다. 나무는 사람이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화를 내지 않는다. 온갖 칭찬을 늘어놓아도 으스대지 않는다. 말 한마디 안 하면서, 모든 말을 다한다. 사람은 그 많은 말을 하면서도, 늘 ‘말이 안 통한다’고 투덜댄다. 장성=박영철 기자
‘숲 속의 소박한 초가집’ 세심원(왼쪽)과 변동해 씨의 300년 묵은 감나무 목공예작품. 장성=박영철 기자
‘숲 속의 소박한 초가집’ 세심원(왼쪽)과 변동해 씨의 300년 묵은 감나무 목공예작품. 장성=박영철 기자
《그는 그 황무지가 누구의 것인지 관심조차 없었다.

그저 자신이 할 일을 고집스럽게 해 나갈 뿐이었다.

그는 매일 아주 정성스럽게 도토리 100개씩을 심었다.

그는 한 해 동안에 1만 그루가 넘는 단풍나무를 심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모두 죽어 버렸다.

그러자 그 다음 해는 너도밤나무를 심었다. 그는 말이 없었다.

말년에는 말하는 것까지 잃어 버렸다.

그는 일흔다섯일 때조차 집에서 12km 떨어진 곳에 나무를 심으러 다녔다.

여든일곱 살 때도 오직 나무를 심었다. (장 지오 ‘나무를 심은 사람’에서)》

나무는 말이 없다. 나무 심는 사람도 말이 없다. 나무는 묵묵히 자란다. 나무 심는 사람도 담담하게 늙어 간다. 나무가 어느 날 하늘을 향해 껑충 자라자, 나무 심는 사람은 하회탈처럼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푹 나온 광대뼈에 굵은 나이테 주름살. 그는 한 그루 나무가 되었다.

춘원 임종국(春園 林種國·1915∼1987) 선생은 평생 나무를 심고 가꿨다. 그것도 편백나무와 삼나무만 심었다. 그는 20년 동안(1956∼1976) 전남 장성군 축령산 자락 569ha(170여만 평)에 279만 그루를 심었다. 그리고 그 다음엔 그 묘목들을 가꾸는 데 온 힘을 쏟았다. 1968년 가뭄 때는 온 가족이 물지게를 지고 비탈길을 오르내리며 물을 주었다. 밤낮이 따로 없었다.

그는 가진 게 없었다. 처음엔 논밭을 팔았다. 나중엔 살고 있는 집까지 팔아버렸다. 그리고 가족과 산속에 움막을 짓고 살았다. 하지만 끝내는 빚을 낼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가 심었던 나무들은 뿔뿔이 여러 사람에게 나뉘어 넘어갔다. 그의 말년은 빈손이었다. 하지만 그는 말이 없었다. 그저 틈만 나면 축령산을 오르내리며 자식 같은 나무들을 살펴볼 뿐이었다.

축령산 일대는 온통 편백나무 삼나무로 빽빽하다. 키가 20∼30m나 되는 40∼50년생도 수백만 그루. 쭉쭉 빵빵하게 잘도 자랐다. 그 인근 산에도 20∼30년 된 편백나무들이 많다. 임 선생의 영향을 받아 산 주인들이 너도나도 따라 심었기 때문이다.

편백나무는 피톤치드(나무가 내뿜는 휘발성 향기)의 왕이다. 소나무 전나무보다 훨씬 많다. 아침엔 그 향기가 코를 찌른다. 머릿속이 박하처럼 맑아진다. 피톤치드는 아토피나 알레르기에도 좋다. 편백나무 집은 개미 등 곤충이 꾀지 않는다.

겨울 아침 편백나무 숲 속을 걷는다. 출발지점은 영화 ‘태백산맥’과 ‘내 마음의 풍금’을 찍은 금곡 초가마을. 그 동네는 숲 입구에 있다. 돌담길 이어진 소박한 산골마을. 민박집도 있다. 삼림욕 코스는 3, 4시간쯤(약 9km) 걸린다. 민박을 하면서 한밤 대책 없이 쏟아져 내리는 총총한 별들도 받아보고, 동틀 녘 황소걸음으로 느릿느릿 걷다 보면 아등바등 살아온 게 참 부끄럽다.

숲 속은 축축하다. 나무는 고요하다. 공기는 달디달다. 나무는 물, 바람, 햇살과 ‘침묵의 소리’로 속삭인다. 햇살은 아침 이슬 속에서 부서진다. 언뜻언뜻 피어오르는 안개. 편백나무는 내 속에 있고, 난 편백나무 속에 있다. 삼나무 속에 있다.

편백나무는 잎 끝이 뭉툭한 마름모꼴. 삼나무는 뾰족한 바늘잎이다. 이들은 서로 어깨동무하며 곧고 푸르게 서 있다. 난 그 속을 걷는다. 키가 자꾸 낮아진다. 잔잔해진다. 가슴속에 푸른 잎새들이 우우우 일어선다. 나무는 숲의 아들, 인간은 대지의 아들. 둘은 한 가지에 난 잎이다. 도시인들은 일분일초를 쪼개가며 콩 튀듯이 산다. 나무는 천년을 하루처럼 산다.

일본 가고시마의 야쿠 섬에는 칠천이백 살의 삼나무(뿌리둘레 43m, 높이 30m)가 산다. 삼천 살 먹은 부부 삼나무도 있고, 천 살이 넘은 것도 수천 그루나 있다. 경기 용문산 은행나무(뿌리둘레 15m, 높이 60여 m)도 천백 살이다. 이들은 여태까지 단 한마디도 한 적이 없다. 단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사람은 뭔가 자꾸 나아가려 한다.

과연 앞으로, 앞으로만 가면 행복한가? 고요히 머무르면 불행한가? 모두들 “돈, 돈…” 하며 미쳐 돌아가는 세상. 등 따습고 편한 쪽으로 나아가려는 것은 아닌가?

임종국 선생은 축령산 편백나무 숲 한가운데 한 그루 느티나무 밑에 누워 있다. 그는 흙이 되고, 나무가 되고, 별이 되었다.

김화성 기자 mars@donga.com

▼‘아니온 듯 가시옵소서’▼

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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