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와 함께 문화산책]‘오케스트라의 센터포드’ 오보에 감상

  • 입력 2006년 1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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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션’에서 가브리엘 신부와 원주민 사이에 마음을 트는 계기가 되는 ‘가브리엘의 오보에’ 장면. 동아일보 자료 사진
영화 ‘미션’에서 가브리엘 신부와 원주민 사이에 마음을 트는 계기가 되는 ‘가브리엘의 오보에’ 장면. 동아일보 자료 사진
소설가 헤르만 헤세는 거주지를 옮길 때마다 정원을 만들었습니다. 정원은 그에게 문명으로부터 벗어나 영혼의 평화를 지키는 장소였지요. 어느 날, 허름한 밀짚모자를 쓴 헤세는 마른 잎을 모아 모닥불을 피웠습니다. 탁탁거리는 불꽃 소리에 문득, 그는 음악을 느꼈습니다.

“그 박자 속에서 결코 지치지 않는 기억은 다시 음악을 만들어내고, 제목도 작곡가도 모르는 곡을 나는 함께 흥얼거린다. 그러다 불현듯 생각나는 이름, 모차르트다. 그의 오보에 4중주곡….”(헤르만 헤세, ‘정원에서 보낸 시간’)

헤세는 낙엽이 타는 냄새와 소리를 들으면서 ‘연금술사의 유희’에 대한 명상과 ‘모차르트 오보에 4중주’를 떠올렸습니다. 헤세가 아니더라도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계절엔 오보에의 따뜻하고 목가적인 음색이 그리워집니다.

영화 ‘미션’을 떠올릴 때 귓가에 맴도는 것은 가브리엘 신부가 이과수 폭포 위에서 원주민에게 들려주었던 오보에의 선율입니다. 영화음악의 거장 엔리오 모리코네가 작곡한 ‘가브리엘의 오보에’는 마치 남미 밀림 속을 탐험하는 듯 너울대는 신비로운 음색으로 원주민들을 빠져들게 만들지요.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 라벨의 ‘볼레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등 무용곡에서 오보에는 애잔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색채를 뿜어냅니다. 또한 오페라에서 소프라노의 아리아를 뒷받침해 주는 멜로디는 주로 오보에가 담당하지요. 브람스 더블 콘체르토,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번 등 많은 오케스트라 곡에서 오보에는 독주악기로 빛을 발합니다. 이 때문에 연주를 마친 지휘자가 오보에 주자를 일으켜 세우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올가을에는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이 유난히 많았습니다. 공연장에서 오보에 주자의 기량과 음색을 비교하며 감상해 보는 것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오케스트라 공연이 시작되기 전 악장의 음정을 조율할 때 ‘A(라)’음을 불어주는 악기가 바로 오보에입니다.

좋은 지휘자는 3명의 연주자를 꼭 데리고 다닌답니다. 악장, 팀파니스트, 그리고 오보이스트죠. 그 중 지휘자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오보에는 전체 오케스트라의 음정을 잡고 사운드 컬러를 좌우하는 ‘센터포드’라고 할 수 있지요.

요즘 잠자리에 들기 전 한스외르크 쉘렌베르거(전 베를린필 오보에 수석)가 연주하는 생상스와 풀랑의 오보에 소나타 음반(DENON)을 듣습니다. 바흐, 비발디, 하이든, 마르첼로, 텔레만 등 바로크 시대의 고음악 오보에 소나타도 요즘 밤을 장식하기에 좋은 곡입니다. 무엇보다 태어난 지 8개월밖에 안 되는 아이가 스르르 잠에 빠져드는 것을 보면서 듣는 꿈꾸는 듯한 오보에 소리는 더욱 맘에 듭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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