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인테리어]그릇 名家는 기품을 담는다

  • 입력 2006년 8월 18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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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없는 요리를 맛있게 하는 그릇은 없다. 그러나 좋은 그릇은 배고픔을 해결하는 이상의 의미를 전해 준다. 그릇은 요리의 마음을 전달하는 매개체다. 사진 제공 로열 코펜하겐
맛없는 요리를 맛있게 하는 그릇은 없다. 그러나 좋은 그릇은 배고픔을 해결하는 이상의 의미를 전해 준다. 그릇은 요리의 마음을 전달하는 매개체다. 사진 제공 로열 코펜하겐
《정성스레 닦은 정갈함이 소담하다. 푸짐하게 식탁을 채워도 번잡하지 않다. 문양이 화려해도 음식은 돋보인다. 좋은 그릇에는 음식만 담기지 않는다. 아사카와 다쿠미의 ‘조선도자명고’에선 “깨어지기 쉬운 그릇을 다루는 일엔 사려, 관용, 너그러움의 덕이 자란다”고 했다. 함을 돈 봉투로 대신하는 세태지만 혼수 품목에 그릇을 넣는 것은 이런 마음 때문이다.

훌륭한 그릇은 애장할 가치가 있다. 주부들이 브랜드를 따지는 이유다. 이름난 브랜드는 충성도도 높다. 레녹스나 웨지우드는 세대를 아우른다. 대중성이 높은 코렐, 신세대가 즐겨 찾는 로젠탈과 로열 코펜하겐도 인기 있다.

요즘은 브랜드 자체보단 스타일이 통일된 세트 시리즈에 관심이 높다. ‘패턴(pattern)’이라 부른다. 특히 이야기와 철학이 담긴 한정판이나 다른 분야의 디자이너가 참여한 패턴은 제품이 나오기 전부터 문의가 잦다. 예술품의 완성미마저 풍기는 그릇 패턴의 세계로 들어가 봤다.》

○ 수백년 전통에 현대적 디자인

그릇 패턴은 브랜드와 역사를 함께 한다.

로열 앨버트의 ‘올드컨트리 로즈’나 로열 코펜하겐의 ‘블루 플루티드’ 등은 패턴 자체가 브랜드로 인식될 정도. 여기에 새로운 분야와의 만남도 게으르지 않다. 대표적인 브랜드 가운데 하나가 웨지우드다.

‘영국 도자기의 아버지’ 조슈아 웨지우드가 창립자다. 18세기에 시작한 브랜드답게 몇 백 년을 이어온 패턴도 있다. 19세기 후반에 디자인돼 1931년 선보인 ‘플로렌틴 터콰즈’도 그 중 하나.

하얀 바탕에 벽옥색 프린트, 산뜻한 에나멜 광택. 상상의 동물 그리핀 문양에선 중세 시대의 품위가 묻어난다. 그리스 신화의 이미지를 무광택 문양으로 표현한 18세기 작 ‘재스퍼’나 1965년 발표돼 산딸기 문양으로 알려진 ‘와일드 스트로베리’도 인기 있는 전통 컬렉션.

장인의 기품을 유지하면서 실험적 시도도 많이 했다. 주방과는 멀어 보이는 패션과의 접목도 이뤄졌다. 영국 디자이너 ‘재스퍼 콘란’, 미국 디자이너 ‘베라 왕’이 대표적이다.

2001년 선보인 패턴 재스퍼 콘란은 앙증맞을 정도의 단순한 색감이 인상 깊다. 그의 패션 경향인 미니멀리즘이 잘 드러난다. 지난해 나온 베라 왕 시리즈는 순백의 깔끔함을 극단적으로 강조한 것이 특징. 베라 왕 하면 떠오르는 웨딩드레스가 연상된다.

○ 한국 디자이너가 만든 패턴 호평

‘이종(異種) 결합기’는 국내에도 있다. 국내의 타 분야 디자이너와 손잡고 한국인이 좋아하는 패턴을 만든 해외 브랜드도 있다. 코렐은 디자이너 이나미 씨가 제안한 패턴 ‘히 앤 쉬(He & She)’를 내놓아 호평 받았다.

이씨는 국내의 대표적인 북 아트 디자이너. 지난해 이건희 삼성 회장의 환갑에 가족들이 수제 책을 선물한 사연을 공개했다가 뜻하지 않은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히 앤 쉬는 블루와 퍼플 팬지꽃의 잔잔하고 은은한 무늬가 특징. 해외에서는 화려하고 큼직한 플라워 패턴이 강세지만 작고 얌전한 패턴을 선호하는 한국적 경향을 반영했다. 히(블루)나 쉬(퍼플) 하나의 패턴 구성이 가능한 것도 매력이다. 중국 싱가포르 대만 등 아시아 지역은 물론 캐나다에서도 인기리에 판매된다.

호응이 워낙 좋아 올 하반기에 두번째 패턴이 나온다. ‘블론 어웨이(Blown away)’는 히 앤 쉬의 업그레이드 개념. 꽃잎이 흩날리는 모습을 부드러운 파스텔 톤의 데생 스타일로 표현할 예정이다.

○ 스페셜 에디션도 인기

로열 코펜하겐은 18세기 덴마크 왕실에 그릇을 공급하려 만든 브랜드. 지금도 결혼식 등 왕실 행사가 있으면 기념작품을 내놓는다. 그릇 수집가들의 사랑을 받는 ‘플로라 다니카’ 패턴이다.

식물도감 ‘국립플로라 대백과사전’에 나온 식물을 모티브로 했다. 1790년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대제에게 선물하려고 만든 것이 시초다. 오리지널 3000여 점은 완성하는 데만 100년이 넘게 걸렸다. 현재 박물관에 전시 중이거나 왕실에서 특별한 날에만 사용한다.

최근 선보인 플로라 다니카 패턴의 걸작은 2004년 5월 황태자의 결혼식에 소개된 디너 세트와 지난해 10월 왕자의 출산 등을 기념한 어린이용 세트. 플로라 다니카 패턴에서 어린이용이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만간 국내에서도 서브 턴들이 출시될 예정.

한정판을 기다리기 감질난다면 일반 플로라 다니카 패턴도 훌륭하다. 숙련공 1명이 수작업으로 하루 평균 1.5개를 만든다. 이 때문에 원하는 문양이 없어 제작을 본사에 주문하면 몇 달씩 걸릴 수도 있다.

자신들의 크리스마스 기념접시 출시 100주년을 앞두고 2004년부터 내놓은 카운트다운 시리즈도 눈길을 끈다. 100주년이 되는 2008년까지 한 해에 하나씩 5개가 나온다. 2004년 ‘스트뢰겟 거리’ 지난해 ‘평화의 기원’에 이어 올해는 코펜하겐의 ‘아말리엔보르 궁전’을 묘사한 작품을 내놓았다. 그 해에만 한정 생산한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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