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향기속으로 20선]<10>초록 덮개

  • 입력 2006년 3월 30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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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소포타미아 문명과 고대 켈트족만이 나무의 신성함을 받든 것은 아니었다. 전 세계적으로 각기 다른 시대의 많은 사회가 독자적으로 나무를 숭배해 왔다. 일부 문명에서는 거대한 나무가 세상의 중심에 놓여 있다고 보았으며, 그 나무를 하늘과 땅과 지하 세계를 잇는 계단이나 사다리로 여겼다. ―본문 중에서》

‘광자(狂者)’는 창의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어디에 미치면 보이는 법이다. 식물에 미치면 식물로 일이관지(一以貫之)할 수 있다. ‘초록 덮개’의 저자는 여러 종류의 식물을 미끼로 신화와 전설, 문화와 관습을 낚아 올린다. 한 권의 책에서 구석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식물과 인류가 어떻게 만나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식물에 대한 인류의 인식이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르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지만, 그런 사실을 확인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아주 오래전 인류가 식물과 대면한 장면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고고학 자료와 문헌 자료를 강한 인내심으로 소화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책처럼 식물을 통해 메소포타미아를 비롯한 고대 문명은 물론 세계 각지의 전설과 신화, 그리고 고전을 읽으려면 인류의 역사를 잘 익은 김치처럼 발효시킬 줄 알아야 가능하다.

인류의 역사는 낯섦에서 익숙함으로, 다시 익숙함에서 낯섦으로 이행하는 긴 과정이다. 독자들은 이 책에서 100종류가 넘는 식물과 만날 수 있다. 때론 세상에서 가장 신성한 나무로 알려진 세이바나무와 보리수나무, 그리고 은행나무를 통해 나무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는 물푸레나무와 주목과 젓(전)나무가 세계수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때론 성경에 등장하는 식물을 통해 밀접한 종교와 식물의 관계에 감격하면서도 식물에 대한 무지가 삶과 죽음을 갈라놓을 수 있다는 사실에 소름 끼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책에서 다양한 식물을 만나면서 행복을 만끽하다 나무를 식물과 상대 개념으로 표현하거나 연꽃을 나무로 표기한 구절을 만나면 피곤할지도 모른다.

식물사는 곧 인간 삶의 역사이다. 세계의 식물사를 정확하게 정리하는 일은 곧 인류의 역사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방법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거칠게나마 다루고 있는 서양 식물사에 관한 부분은 매우 강한 인상과 함께 허전함도 준다. 허전하다는 것은 16세기의 박물지를 언급하면서 중국은 물론 세계 식물사에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할 16세기 중국의 이시진(李時珍)이 편찬한 ‘본초강목’을 언급하지 않았거나, 중국과 일본에 관한 식물을 언급하면서 한국에 관한 얘기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허전한 것은 아직까지 우리가 저술한 식물사를 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전히 우리는 스스로 한국인을 위한 식물사는 물론이거니와 서양인들이 읽을 수 있는 작품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이 분야의 작업을 해 보는 것이 ‘초록 덮개’를 통해 필자가 얻게 된 한 가지 꿈이다.

다양성은 생명체의 생존 조건이다. 그래서 초록 덮개, 즉 한 그루의 나무와 한 포기의 풀이 인류의 희망이자 나의 희망이다. 내가 이 책에서 희망의 씨앗을 찾아 지금에 이르렀듯 분명 누군가 다른 이도 이 책을 통해 희망의 끈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강판권 계명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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