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명문 직업학교를 가다]<19>이탈리아 외국인 요리학교

  • 입력 2006년 3월 18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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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IF 수업은 크게 재료 준비, 이론 교육, 실습, 평가 등 4단계로 나뉘어 진행된다. 학생들은 평가 시간에 교수가 만든 요리를 통해 자신이 만든 요리의 문제점을 깨닫는다. 감자로 만든 전채요리 ‘리체 디 파타테’ 실습을 마친 일본인 학생 15명이 리카르도 마렐로 교수(36·오른쪽)의 평가를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아스티=이호갑 기자
ICIF 수업은 크게 재료 준비, 이론 교육, 실습, 평가 등 4단계로 나뉘어 진행된다. 학생들은 평가 시간에 교수가 만든 요리를 통해 자신이 만든 요리의 문제점을 깨닫는다. 감자로 만든 전채요리 ‘리체 디 파타테’ 실습을 마친 일본인 학생 15명이 리카르도 마렐로 교수(36·오른쪽)의 평가를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아스티=이호갑 기자
‘알로로, 티모, 바실리코, 로스마리노….’

구로키 마사루(26) 씨는 테이블 위에 놓인 풀들의 이름을 왼쪽부터 하나씩 머릿속에 입력했다. 손으로 알로로를 집으면서 오전에 배웠던 수업 내용을 떠올렸다.

‘알로로는 코닐리오(토끼고기)의 누린내를 없애기 위해 쓰는 허브지.’

향을 맡기 위해 알로로를 코에 갖다 대려는 순간 리카르도 마렐로(36) 교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알로로는 향이 강해 코에 너무 가까이 대면 후각이 마비된다. 바실리코는 으깨면 향이 달아나니 최대한 칼날을 수직으로 세워 미는 느낌으로 썰어야 한다.”

구로키 씨는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 주 토리노 시 인근 아스티의 이탈리아요리학교(ICIF·www.icif.com) 마스터 과정에 등록한 학생이다. 1년 반 전 결혼한 그는 6년간 일본에서 이탈리아 식당의 이탈리아인 요리사 밑에서 일하다 ‘정통 이탈리아 요리’를 배우기 위해 신혼의 단꿈을 잠시 접었다.

ICIF는 1991년 미국 이탈리아 일본 캐나다인 10명이 1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설립한 이탈리아 요리사관학교다. 이탈리아 요리의 진정한 맛은 물론 이탈리아의 역사와 문화를 세계에 전파하는 ‘이탈리아 요리 대사’를 키우기 위해 세워졌다. 수업 시간에 요리 외에 이탈리아 역사, 지리, 문화를 가르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비록 역사는 짧지만 프랑스의 르 코르동 블뢰(Le Cordon Bleu), 미국의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와 함께 세계 3대 서양 요리학교로 불린다. 지금까지 29개국 3000여 명이 이곳을 졸업해 호텔이나 이탈리안 레스토랑 요리사, 요리학원 강사, 요리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인은 300여 명이 이곳을 거쳐 갔다. 뉴욕타임스는 1997년 10월 이 학교를 ‘세계 최고의 외국인을 위한 이탈리아 요리학교’라고 소개했다.

내부 강사 3명과 유명 요리사 10여 명, 소믈리에 1명이 일주일 코스인 특별 과정에서 6개월 마스터 과정 까지 4개 코스를 운영한다.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통역이 교수 옆에서 일일이 설명해 준다.

수업 시간에 배우는 요리는 크게 야채, 파스타, 리소토, 고기, 생선, 와인, 제과 제빵, 이탈리아 와인, 후식 등 10여 개. 특히 마스터 과정의 경우 50시간 이상의 와인 수업을 받는데 포도 품종에서부터 기후, 토양, 제조법 등 와인의 ‘A부터 Z까지’ 배운다.

수업은 월∼금요일 하루 10시간씩. 일주일에 3시간 이상은 이탈리아어를 가르친다.

특히 초반에는 기초를 단단히 하기 위해 올리브 치즈 허브 식초 등 음식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기본 재료에 대한 이론 교육을 실시한다.

수업 방식은 선(先)시범, 후(後)실습으로 진행된다. 교수가 먼저 단계별로 시범을 보이면 조리법이 적힌 종이를 보면서 학생들이 따라하는 식이다. 학생들은 자신의 머리 위에 설치된 TV 스크린을 통해 교수의 조그만 손놀림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다.

기자가 방문한 날, 실습실에서는 구로키 씨 등 일본인 학생 15명이 길게 줄을 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찐 감자를 으깨 성게 모양으로 튀겨 낸 전채 ‘리체 디 파타테’에 대한 교수의 평가를 받기 위해서다.

“메인 요리 전에 먹는 음식이기 때문에 양이 많으면 안 된다. 또 손님의 입에 들어갈 수 있는 크기로 만들어야 하는데 너무 크게 만들었다.”

나카무라 고이치(22) 씨가 만든 요리에 대한 마렐로 교수의 평가다. 나머지 14명이 만든 요리의 모양, 색, 크기, 맛에 대한 평이 이어졌다. 학생들은 요리 크기와 잘랐을 때 내용물의 익힘 정도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배웠다.

요리사인 아버지를 이어 마스터 과정에 입문했다는 나카무라 씨는 “교수가 만든 것을 눈으로 보고 맛을 본 뒤 내가 만든 것과의 차이를 스스로 깨닫는다”고 말했다.

마렐로 교수는 “똑같은 재료와 조리법으로 만들어도 맛과 모양이 다른 이유는 사람의 손맛이 다르기 때문”이라며 “일정한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 가르치고 연습시킨다”고 말했다.

마스터 과정 졸업장을 받기 위해선 ICIF에서 2개월의 이론 및 실습 교육을 받고 4개월의 현장실습을 무사히 마쳐야 한다. 실습생들은 이탈리아 전 지역의 100여 개 이탈리아 식당에서 숙식만 제공받고 무급으로 일하면서 배운다.

ICIF는 2000년 이후 해외 지사 설립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 여름에는 중국 상하이(上海)에 1100평 규모의 2년제 ICIF 중국학교가 문을 열었다. ICIF 코리아(www.icif.co.kr)는 2000년 11월 문을 열었다. 이탈리아 ICIF에 등록하기 위해서는 ICIF 코리아에서 운영하는 3개월 코스의 예비학교를 마쳐야 한다. 기본적인 이탈리아어와 조리기구 사용법, 요리 용어 등을 익히지 않으면 수업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아스티(이탈리아)=이호갑 기자 gdt@donga.com

ICIF 코스 종류
이름기간인원(명)수업료(유로)
마스터 과정6개월(2개월 교육+4개월 현장실습)15∼208000
단기 과정2개월(3주 교육+5주 현장실습)15∼204000
전문가 재교육 과정3주(2주 교육+1주 ICIF 실습)12∼203000
특별 과정1주(ICIF 교육 및 실습)12∼201260∼2250
수업료는 변동될 수 있으며 예비학교 3개월 수업료(약 300만 원)와 기타 비용(항공료, 비자 발급 비용, 통역비용 등 약 1800유로)을 제외한 액수임.

▼브루노 리브랄롱 총장 “졸업후도 ICIF의 요리법 지켜야”▼

브루노 리브랄롱(61·사진) 총장은 ICIF 탄생의 주역이다. 1990년 9월 이탈리아요리사협회 회장을 맡고 있던 그는 미국 이탈리아식당경영자모임(GRI) 토니 메이 대표 등과 이 학교 설립에 뜻을 모았다. 세계적으로 정통 이탈리아 요리사가 부족해 인력 양성의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그는 인터뷰 내내 ‘최고’란 말과 ‘비영리재단’이란 말을 수없이 되풀이했다.

―이탈리아 요리학교는 여러 개 있지 않은가.

“간판만 내건 곳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정통 이탈리아 요리를 가르치는 곳은 우리뿐이라고 자신한다. 요즘 이탈리아 최고의 요리사로 꼽히는 산티니 나디아, 마르케시 괄티에로 등도 ICIF 출신이다.”

―프랑스의 르 코르동 블뢰와 비교하면….

“같은 수준으로 보면 된다. 프랑스 요리는 르 코르동 블뢰지만 이탈리아 요리는 ICIF다. 이탈리아 요리를 제대로 배우고 싶다면 당연히 우리 학교를 택해야 한다.”

―왜 비영리재단인가.

“연간 고정 비용이 최소 90만∼100만 유로(약 10억5380만∼11억7087만 원)다. 수업료 수입만으론 감당이 안 된다. 이탈리아 상공부와 피에몬테 주 정부, 기업의 지원을 받아 충당하고 모자라면 각종 행사를 열어 마련한다. 정부의 지원을 받지만 정부 소속 기관은 아니고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사무직 직원의 월급을 빼고 모든 수입은 학생을 위해 사용된다.”

―학생들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

“요리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없는 사람은 오지 않는 것이 좋다. 학생도 학교도 돈만 버리는 것이다. 입학 전에 이탈리아어를 열심히 공부해야 하나라도 더 배울 수 있다. 졸업한 뒤에는 ICIF에서 배운 요리법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리소토를 만들 때 아무 쌀이나 쓰는 요리사가 있는데, 이탈리아 쌀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리소토가 아니다.”

아스티=이호갑 기자 gd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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