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673>卷七. 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6년 1월 24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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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진 호군(護軍), 그건 또 무슨 소린가? 항왕이 쳐 둔 그물로 뛰어들다니?”

한왕이 진평을 쳐다보며 물었다. 진평이 잠시 뜸을 들여 생각을 가다듬은 뒤에 말했다.

“항왕이 서쪽으로 가지 않고 오히려 동쪽 고릉으로 간 것은 서초 땅 밖에서 한번 크게 우리 한군을 쳐부수어 추격의 기세를 꺾어 놓으려는 속셈 때문입니다. 그러려면 제왕 한신과 팽월의 군사들이 이르기 전에 한군을 꾀어내어 단 한 번의 싸움으로 여지없이 깨뜨려 버려야 합니다. 양하에 한 갈래 나약한 군사를 남겨 먼저 한 싸움을 내 준 것은 우리를 방심하게 만들기 위함이요, 되도록 서초 땅에서 떨어진 고릉에다 싸움터를 고른 것은 우리가 한신과 팽월의 군사를 기다리지 않고 뒤쫓아 오기를 바라서입니다. 그런데 그곳으로 대군을 몰아가는 것은 항왕이 쳐 둔 그물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나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하지만 항왕의 군사는 우리 한군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데다 굶주리고 지쳐 있다. 그들이 동쪽으로 간 것은 정신없이 쫓기다보니 그리된 것일 뿐이다. 무엇이 두려워 그들을 뒤쫓지 못한다는 말인가?”

“대왕께서는 벌써 수수(휴水)의 싸움을 잊으셨습니까? 그때 우리는 56만 대군으로 편히 쉬고 있다가 천리를 달려온 항왕의 정병 3만에 대패하여 시체로 수수의 물길을 막았습니다.”

진평이 그렇게 일깨웠으나 어찌된 셈인지 한왕은 그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오히려 못마땅한 표정으로 진평을 나무라듯 말했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차일시피일시]. 어려웠던 옛일을 들추어 군중(軍中)의 사기를 꺾는 것은 병가(兵家)가 꺼리는 바 임을 모르는가?”

그리고는 무슨 오기라도 부리듯 소리쳤다.

“오히려 그때 그랬으니, 이번에는 반드시 이겨 그 치욕을 씻어 보자. 장수들을 모두 불러 모아라!”

이에 장수들이 모두 한왕의 군막으로 불려오자 바로 고릉으로 쳐들어갈 의논을 시작했다. 뒤늦게 한왕의 군막에 든 장량이 진평을 편들어 한왕을 말려 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오기인지 호기인지 한왕은 부득부득 싸우기를 고집했다.

“자방, 과인도 싸움터를 떠돈 지 그럭저럭 여덟 해째요. 무릇 군사를 부리는 데는 전기(戰機)란 것이 있소. 그런데 지금이 바로 항왕을 잡는 데 놓쳐서는 안 될 그 전기요.”

그러면서 기어이 군사를 냈다. 마침내 말리기를 단념한 장량이 진평에게 무언가 눈짓을 하더니 다시 한왕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진 호군과 제게도 한 갈래 군사를 남겨 주십시오. 만약에 대비해 고릉 동쪽에다 든든한 진채를 구축해 놓겠습니다.”

장량의 말이 간곡해서인지 한왕도 그것까지는 마다하지 않았다. 왕릉의 군사를 후군(後軍)으로 남겨 장량과 진평에게 맡기고 자신은 나머지 장졸을 휘몰아 고릉으로 달려갔다.

이때 패왕 항우는 탐마를 풀어 한군의 움직임을 살피면서 고릉 북쪽에다 한바탕 무시무시한 반격전을 펼칠 채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양쪽으로 골이 깊은 구릉과 큰 숲을 끼고 있는 들판을 싸움터로 고른 패왕은 그 들판 끄트머리에 있는 작은 산기슭에 본진을 내렸다. 그리고 먼저 항양(項襄)에게 한 갈래 군사를 나눠 주며 말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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