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조지형]美대법원의 사학법 위헌 판례

  • 입력 2006년 1월 18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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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의 신입생 배정 거부 방침의 철회에도 불구하고 사학법 개정안을 둘러싼 사회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핵심 쟁점은 사학에 대한 정부 개입의 위헌성 여부다. ‘개방형 이사’ 등 이름을 무엇이라고 붙이든 그것은 외부이사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 조합원이 외부이사가 되든 안 되든, 외부이사가 이사회의 4분의 1이든 아니든 그것은 분명 정부 개입의 합법화다. 말하자면 사학법 논란의 본질은 원칙의 문제이다.

비슷한 논란에 대해 미국에서도 판례가 있다. 1819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다트머스대 이사회 대 우드워드 판결’을 살펴보자. 미국 아이비리그 중 하나인 다트머스대는 1769년 영국 국왕으로부터 인허장을 받아 뉴햄프셔 주의 하노버에 설립됐다. 미국이 독립한 후 내셔널리즘의 열기 속에서 뉴햄프셔 주의회는 대학 개혁을 단행했다. 주정부는 대학의 투명성과 공공성을 높이고 교육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명분을 내걸고 다트머스대 이사회의 구성원을 21명으로 확대하여 외부이사를 임명하고 대학 감사회를 설치하려 했다.

그러나 연방대법원은 뉴햄프셔 주의 다트머스대 개혁법을 위헌으로 판결했다. 이사회 개혁은 곧 사학의 공립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당시 대법원은 이 개혁법이 다트머스대의 발전에 현저히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또 상당수의 국민이 이 개혁법을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도 염두에 두었다. 그러나 문제는 대학 설립자에 대한 국가의 신의(信義)였다. 다트머스대 개혁법은 사유재산을 사회에 내놓을 당시 대학 설립자와 국가가 맺은 신의와 계약의 파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정권이 바뀌더라도 국가는 신의를 계속 준수할 의무가 있다고 선언했다.

다트머스대 판결이 ‘사학의 마그나카르타(대헌장)’라고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국가이념으로 내건 우리 정부에도 신의 준수 의무와 사유재산보호의 의무가 엄연히 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는 사학에 대한 국가보조금이다. 사학의 재정구조상 국가보조금이 없다면 현실적으로 운영이 거의 불가능하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된다면 국가는 마땅히 그 운영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확보해야 한다. 사학법 개정안 지지자들도 이런 근거를 내세우고 있다.

그렇다면 다트머스대에 대한 판결은 사학이 국가에 재정적으로 의존하지 않는 상황에서 나온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이 판결도 미국의 사학이 국가재정에 의존하던 19세기 초에 있었다. 미국 사립대학은 19세기 후반인 1870년대에 가서야 개인적인 기부와 자발적인 노력을 바탕으로 명실상부한 사학으로서의 위치를 확보하기 시작했다. 이는 이 판결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중요한 헌법적 지침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국가가 모든 국민의 교육을 책임질 수 없었던 시절, 훌륭한 개인들이 국가의 신의를 믿고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내놓으며 학교를 세웠다. 그러나 학교 운영은 국가의 재정적인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고, 국가는 개인의 헌신과 비전 없이는 국민의 교육권을 충족시켜 줄 수 없었다. 개인이나 국가 모두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현 사학구조의 모순은 국가와 개인 모두의 책임이며 업보이다.

이제 사학법이 결국 사학의 공립화를 초래하는 것이 아닌지 냉정하게 따져 보아야 한다. 사립과 공립의 불분명한 교육 현실을 빌미로 모든 학교를 공립화할 수는 없지 않은가. 사유재산에 대한 위헌적 개입은 사학뿐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소유권에 대한 위헌적 개입을 정당화할지도 모른다. 정부는 등록금의 자율화, 기부금의 충분한 세제 혜택 부여 등을 통해 사학이 사학답게 발전할 수 있는 사회기반을 조성해 주어야 한다. 그런 연후에 기준을 정해 사학답지 않은 사학은 과감하게 도태시키고 공립학교의 확충을 통해 국민의 학습권 보장을 정상화해야 한다.

조지형 이화여대 교수·미국법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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