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나무와 숲의 연대기’…‘생명의 어머니’ 나무

  • 입력 2005년 8월 27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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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숲의 연대기/데이비드 스즈키 지음·이한중 옮김/257쪽·9900원·김영사

셰익스피어가 ‘리어왕’을 쓸 무렵 생을 시작한 한 그루 나무가 있었다. 뉴턴이 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목격했을 즈음 이 나무는 막 싹을 틔우고 있었다.

거대한 산불이 북미 대륙을 휩쓸고 간 직후, 소나뭇과에 속하는 ‘더글러스퍼(Douglas-fir)’ 나무에 매달려 있던 구과(毬果)가 천천히 비늘껍질을 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속에 있던 날개 달린 씨앗을 ‘재의 숲’으로 날려 보냈다. 산불의 열기가 수십 년 동안 닫혀 있던 단단한 열매껍질을 열어젖힌 것이다.

씨앗은 갓 자란 들꽃의 잎사귀 아래로 피신했다. 그리고 공기와 햇빛과 물을 빨아들이며 생명의 풀무질을 시작한다.

나무는 지상의 모든 생명을 품는다.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준다. 나무는 죽어 가면서까지, 죽은 나무조차 숱한 생명의 보금자리와 피신처가 되어 준다. 사진 제공 김영사

‘비는 천국에서 오고, 불은 지옥에서 온다’(단테)고 했던가. 그러나 더글러스퍼는 그 ‘인페르노(Inferno)’ 속에서 생명을 잉태시켰다. 불도 비처럼, 곤충의 윙윙거림처럼, 날다람쥐나 붉은나무들쥐의 찍찍 소리처럼 온전한 숲의 일부였던 거다.

이 나무는 이제 400년의 수령을 헤아린다. 키는 50m가 넘고 둘레가 5m에 이르는 거대한 나무로 자랐다.

자신의 오두막이 있는 해변의 오솔길에서 이 나무를 바라보던 저자는 불현듯 작가 존 파울스의 말을 떠올렸다. “나무는 시간을 뒤튼다!”

장구한 시간 스스로를 영속시키며 진화의 경이로움을 증명하는 나무. 나무는 시간의 형상(形象)이다. 나무의 욕망과 맹목 그리고 그 놀라운 힘! 나무는 자신의 나이테 속에 시간을 옭아매며 이 적막한 행성에 생명의 뿌리를 내려 왔다.

이 책은 한 그루 나무에 대한 전기(傳記)다. 한 그루 더글러스퍼 나무의 일생을 담쟁이 덩굴처럼 촘촘하게 엮는다.

저명한 환경운동가이자 생물학자인 저자는 나무 한 그루의 생애를 줄기 삼아 온갖 생물의 역사와 자연현상으로 가지를 친다. 다른 시대와 세계 모든 곳을 우리와 연결시키며 지구라는 행성에 사는 모든 나무, 모든 생명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무는 저마다 공동사회의 일원이다. 숲 속의 나무들은 흙 속에서 뿌리끼리 서로 섞여서 하나가 된다. 서로 소통하고, 서로서로 나누며 돕는다. 그 어떤 나무 하나도 고립된 섬이 아니다. ‘더불어 숲’이다. “나무에게 은둔자의 모습은 낯선 것이다.”

나무는 지상의 모든 것을 품는다.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준다. ‘모든 살은 풀이다’라는 성경의 비유처럼 우리의 생은 전적으로 나무에, 그 식물의 세계에 빚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나무는 생명이라는 드라마에서 엑스트라처럼 서 있다. 배경처럼 그 자리에 그렇게 있다. 우리는 좀처럼 그들을 알아보지 못한다.

나무는 죽어 가면서도 숱한 생명의 보금자리와 피신처가 되어 준다. 고사목이 된 거목은 쓰러져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볼록한 흙무덤을 만든다. 그리하여 완전히 흙으로 돌아간 고목(枯木)의 일생을 지켜보노라면 어찌 숙연해지지 않으랴.

먼 훗날, 이곳을 지나는 나그네는 숲 속에 죽어 나뒹구는 통나무가 한때 거대한 더글러스퍼였음을 알까. 그 통나무에 흐르던 생명의 핏줄이 우리와 이어져 있음을 알까.

“우리와 한 그루 나무가, 그 나무와 인연을 맺고 있는 작은 미생물 하나, 새 한 마리, 늑대 한 마리가, 아니 이 대지와 우리가 온통 하나였음을!”

원제 ‘TREE-A Life Story’(2004년).

이기우 문화전문 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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