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나를 찾아 떠나다]<2>남양주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 입력 2005년 7월 22일 03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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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수도원의 이예로니모 수사(왼쪽에서 세번째)와 백요셉(왼쪽에서 네번째) 수사가 피정 온 젊은 신자, 수녀들에게 수도원생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남양주=윤정국 문화전문기자
요셉수도원의 이예로니모 수사(왼쪽에서 세번째)와 백요셉(왼쪽에서 네번째) 수사가 피정 온 젊은 신자, 수녀들에게 수도원생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남양주=윤정국 문화전문기자
《수도원의 새벽은 고요하고 아늑하다. 인근 마을에서 들려오는 닭 울음소리만 유난히 크게 들릴 뿐이다. 19일 오전 4시 50분 수도원 내 성당에서 나직한 노래 소리가 들려온다. “… 동녘에 밝아오는 새벽 하늘에, 어두운 밤 광명 앞에 뒷걸음치고, 작은 별 큰 별들이 빛을 잃으며, 환하게 밝은 태양 다가 오시네….” 이곳에서 수도생활을 하는 수사(修士)들이 아침기도를 드리며 부르는 찬미가다.》

이어 성경 시편 10장이 낭송된다. “연기처럼 내 세월은 스러지고, 내 뼈는 불덩이처럼 타고 있나이다. 시든 풀과 같이 말라버린 이 마음, 먹기조차 이 몸은 잊고 있나이다.” 검은 제복의 수사들이 올리는 기도는 하느님의 현존(現存)을 느끼게 할 만큼 경건하다.

오전 6시 미사가 봉헌된다. 인근 마을에서 온 신자와 피정 온 신자, 수녀 등 30명이 참석했다. 이프란치스코 원장 수사는 “수도원에 오는 모든 이들에게 평화와 기쁨이 충만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고, 피정 온 한 수녀는 “몸과 맘이 쉼을 얻고 재충전되어 다시 삶의 현장에 나가 주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게 해 달라”고 기원했다.

이곳은 서울 태릉에서 의정부시 쪽으로 차로 5분 정도 달리면 닿는 불암산 기슭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경기 남양주시 별내면 화접5리). 검정 철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넓은 배밭이 펼쳐진다. 수도원인지 과수원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다. 대문에서 흙길을 따라 100m 가량 걸으니 성모 조각상과 성당이 나타나 수도원임을 알게 해준다.

요셉수도원은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를 모토로 기도와 노동, 그리고 성독(聖讀·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성서를 읽고 이를 되새기고 기도하며 하느님 안에 머무는 것)을 통해 오로지 ‘하느님을 찾는’ 삶을 사는 수도자들의 공동체. 수사들은 하루 7차례의 공동기도회에 참석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배밭을 가꾸거나 자급자족용 채소를 재배하는 등의 노동을 한다.

이 프란치스코 원장 수사는 “김수환 추기경님이 수도권에도 수도원이 필요하다고 경북 칠곡군 왜관의 베네딕도수도원에 요청해 1987년 설립됐다”며 “수도권 지역의 신부와 수녀, 신자들이 즐겨 피정 온다”고 설명했다. 피정은 피세정령(避世靜靈)의 준말로 세속을 피해 영혼을 정화하는 일.

수도원에는 수사 10명의 노동 공간인 2만3000평의 배밭, 미사와 기도회를 봉헌하는 성당, 외부 손님이 숙박할 수 있는 4채의 ‘피정의 집’(방 16개에 20여 명 수용 가능), 수사들의 생활공간인 봉쇄구역, 예수님이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의 언덕으로 올라간 길을 본떠 만든 ‘십자가의 길’ 등이 있다.

수도원 대문은 항상 열려 있어 언제든 누구나 와서 기도하고 산책하며 수도원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그러나 하루 이상 묵을 경우에는 예약을 해야 한다. 예약은 6박 7일까지 가능하다. 백요셉 수사는 “현재 예약이 밀려 있어 개인피정은 1주일, 단체피정은 한 달 정도 앞두고 예약해야 원하는 날짜를 선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별도의 이용료는 받지 않으며 미사 때 은총 받은 만큼 봉헌금을 내면 된다. www.osb.or.kr/joseph, 031-527-8115

수도원은 특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않고 외부 신자가 자연 안에서 수사들과 함께 기도하고 미사 드리고, 원할 경우 노동도 하며 수도생활을 간접체험하도록 함으로써 선교의 임무를 수행한다.

폭염이 맹위를 떨친 이날 오후, 과수원에 매미소리가 요란하지만 피정 온 수녀들과 50대 여성 신자 등 7명은 성당에서 묵상 기도하며 내면으로 침잠해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였다. 성당 옆 십자가의 길을 따라 걸으며 40대 여성 신자 5명은 성가를 부르고 묵주기도를 올렸다. 뜨거운 태양 아래 과수원의 배가 익어가듯 수도원을 찾는 이들의 신앙도 영글어 간다.

남양주=윤정국 문화전문기자 jk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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