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다, 디자인CEO…디자인이 기업 운명 갈라

  • 입력 2005년 7월 6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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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의 디자인업체 이노디자인의 김영세(金暎世) 대표가 새로운 휴대전화 디자인을 들고 삼성전자를 찾아갔을 때의 일. 뜻밖에 마케팅 기술 생산 재무 등 각 분야의 최고 임원이 모두 모여 있었다. 이기태(李基泰) 삼성전자 정보통신 총괄사장은 임원들에게 일일이 질문을 던졌다. 디자인 품평회가 아니라 사업전략회의에 가까웠다. 회의는 1시간 반 만에 끝났고 즉석에서 제품 개발 추진이 결정됐다. 김 대표는 저서 ‘이노베이터’에서 “최고경영자(CEO)가 디자인을 중심에 놓고 모든 부서의 연관성을 파악하며 빠른 속도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건 엄청난 파워”라고 지적했다. 디자인이 한 기업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는 시대. 디자인 인력에 대한 기업의 수요가 늘면서 디자인과 경영 이론을 함께 가르치는 교육기관도 주목을 받고 있다.》

○ 왜 디자인인가

한때 쇠락하던 애플컴퓨터. 설립자 스티브 잡스 씨는 “디자인은 디자이너에게 맡기고 엔지니어는 그 디자인에 맞게 만든다”는 처방을 제시했다.

이후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 씨는 ‘누드’ 컴퓨터 아이맥과 MP3플레이어 아이팟을 내놓으며 애플은 화려하게 부활했다.

모토로라가 지난해 세계 휴대전화 시장에서 삼성전자에 빼앗겼던 2위를 되찾은 것은 ‘레이저’ 덕분. 디자이너 짐 웍스 씨가 디자인한 ‘세계에서 가장 얇은 휴대전화’는 전 세계 소비자들을 열광시켰다.

양덕준(楊德準) 레인콤 사장이 이노디자인의 김 대표를 무작정 찾아가 디자인을 부탁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아이리버는 그렇게 나왔고 레인콤은 MP3플레이어 분야에서 세계적인 업체가 됐다.

전문가들은 상품의 기능과 품질이 엇비슷해지면서 디자인이 소비자의 선택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 것으로 보고 있다.

○ 디자인이 우선

이건희(李健熙) 삼성그룹 회장은 21세기 기업경영의 최후 승부처로 디자인을 지목했다. 삼성전자는 1996년을 ‘디자인 혁명의 해’로 선언하고 ‘최고디자인 책임자(CDO·Chief Design Officer)’라는 직책까지 만들었다.

LG전자의 에어컨 휘센은 몇 년째 세계시장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히트 상품. 휘센은 디자인을 먼저 하고 기능을 생각하는 ‘디자인 선(先) 제안 활동’이 적용됐다. LG전자는 최근 이 제도를 모든 제품으로 확대키로 결정했다.

다른 산업 분야에서도 디자인 담당 임원의 주가가 높아지고 있다. 공식적으로 ‘CDO’를 두는 기업도 많아졌고 관련 인력에 대한 수요도 느는 추세.

○ 어디서 배울까

미국 하버드대나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은 아예 미술학석사(MFA) 개념을 가미해 ‘디자인 CEO’를 육성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1990년대 후반부터 경영과 디자인을 결합한 석사 과정이 등장했다.

우선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경영연구원이 핀란드 헬싱키경제대 경영대학원과 함께 운영 중인 KEMBA(Korean Executive MBA) 과정에 국제디자인경영 전공이 있다.

KEMBA 졸업생인 패션업체 EXR코리아 민복기(閔復基) 대표는 “디자인에 새로운 경영 이론을 접목시켜 한발 앞선 경영 마인드를 가질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홍익대와 성균관대, 이화여대도 디자인대학원에서 디자인경영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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