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정은미]‘다빈치 코드’가 남긴 것

  • 입력 2005년 6월 7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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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팔리지 않는다고 출판계가 아우성이다. 하지만 소설 ‘다빈치 코드’의 인기는 아직도 식을 줄 모른다. 현재까지 44개 언어로 번역돼 약 1800만 부가 팔려 나갔다고 한다. 불황의 늪에서 독주하는 다빈치 코드의 성공 비결은 과연 무엇인가?

다빈치 코드는 서구 도상학(圖像學)의 암호를 푸는 방법으로 성배의 비밀을 파헤쳐 가는 스릴러물이다. 작가의 오류나 책 내용의 신빙성 문제는 여기서 일단 보류해 두자.

이 소설의 어마어마한 세계적 파장을 한번 보라. 지금 루브르 박물관은 이 책을 들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보러 온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책에 언급된 예술 종교 분야의 책 판매량은 덩달아 올라갔다. 책에 대한 가톨릭계의 논란 수위가 점차 높아지면서 종교에 별 관심이 없는 일반인까지 고대 암호를 해독한다고 법석을 떤다는 얘기도 들린다. 영화배우 톰 행크스를 내세워 제작한 다빈치 코드 영화도 내년에 개봉할 예정이라니, 그야말로 완벽한 블록버스터 소설이 탄생했다.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사실이 있다. 이 소설의 탄생 배경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그의 작품, 루브르 박물관과 각종 건축물에 대한 작가 댄 브라운의 풍부한 지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는 것.

지금은 인문학의 위기라던가. 어쩌면 다빈치 코드는 이 시대 ‘인문학의 화려한 부활’을 예고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1998년 아카데미상을 휩쓴 영화 ‘타이타닉’의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서구 미술사에 얼마나 많은 빚을 지고 있는지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 영화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로즈의 누드화는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에서, 뱃머리 위에서 로즈가 두 팔을 벌린 채 바닷바람을 맞으며 옷깃을 휘날리는 그 유명한 타이틀 장면은 그리스 조각상 ‘사모트라케의 승리의 여신’에서 따온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모네의 ‘수련’ 등이 영화의 근사한 미장센(무대에서의 등장인물 배치나 동작·도구·조명 등에 관한 종합적인 설계)으로 줄줄이 등장한다.

영화 ‘ET’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소년과 외계인의 손가락이 마주하는 장면에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라는 전율적인 장면을 인용했다. 이탈리아 의류업체 베네통이 제작해 엄청난 충격을 줬던 ‘수녀복과 사제복을 입은 남녀의 키스’ 광고 사진은 에곤 실레의 ‘수녀와 추기경’을 패러디한 경우다. 이런 것들이 누구나 손쉽게 연출할 수 있는 장면은 아니다. 아주 잘된 퓨전 상품을 만들어 낸 작가들은 그저 마케팅에 성공한 자본주의의 선봉장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언제라도 전통 인문학을 상품화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의 문화 콘텐츠는 대박을 터뜨릴 수 있는 벤처로서의 가능성이 충분하다. 문화 콘텐츠 산업의 진정한 파워는 서로 다른 비즈니스 간의 네트워크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겨울연가’의 인기는 성형수술 시장과 한글 강좌 등으로 이어지지 않던가. 이것이 바로 21세기형 문화상품의 호환성과 경쟁력이다.

그렇다면 변화무쌍한 대중문화의 속성을 어떻게 지속 가능하게 만들 것인가. 그 답도 다빈치 코드에서 찾을 수 있다. 바로 ‘대중적 코드’를 읽어 내는 것이다.

대중의 지적 호기심을 채우면서도 동시에 흥미로운 소재를 발굴하는 것에 그 열쇠가 있다.

얼마 전 고구려 고분벽화에 숨겨진 열쇠를 바탕으로 한국 미술사의 ‘고구려 코드’를 밝혀낸 강우방 교수의 기사를 읽고 가슴이 떨렸다. 우리의 문화유산에는 많은 희망이 담겨 있다. 언젠가 세계에서 몰려온 사람들이 고구려의 사신도를 보려고 줄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일까.

정은미 화가·명지전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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