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그래미 8관왕’ 레이 찰스, 솔의 전설을 노래하다

  • 입력 2005년 2월 23일 18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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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U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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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의 발로 꿋꿋이 서라

일곱 살에 녹내장으로 시력을 잃은 레이 찰스 로빈슨에게 어머니 아레사(샤론 워런)는 말한다. “무엇이든 두 번까지는 엄마가 도와줄게. 하지만 세 번째부터는 네 힘으로 해야 해.” 시력은 잃었지만 창문 밖 벌새가 날갯짓하는 소리, 마룻바닥에 부딪치는 발자국 소리의 차이까지 예민하게 분간해내는 레이의 귀는 그가 세상을 자신의 두 발로 딛고 설 수 있도록 해 준다.

영화 속 레이를 찾아가는 방법도 소리(노래)를 따라가는 것이다. 열일곱 살의 레이가 플로리다에서 시애틀의 재즈클럽까지 홀로 그레이하운드를 타고 대륙을 종단하는 시점부터 시작하는 영화는 그의 삶의 중요한 전환점과 히트 곡을 접목시켜 한 굽이씩 넘어간다.

선배 스타들의 창법을 넘어서지 못하며 ‘나만의 음악은 무엇인가’를 고민하던 그는 아내 델라 비아(케리 워싱턴)를 만난 뒤 가스펠에 블루스를 접목시킨 ‘아이브 갓 어 워먼’을 만들어 솔 장르를 개척한다. 그의 백 코러스이자 정부(情婦)였던 마지 핸드릭스와의 사랑과 결별은 마지의 울부짖는 듯한 보컬에 실린 ‘힛 더 로드 잭’에 고스란히 담겼다.


인종차별이 공공연했던 1960년대, 레이는 흑인과 백인의 객석이 갈린 ‘유색(colored)’인종 분리좌석이 있는 공연장에서 노래 부르기를 거부했고, 이 때문에 고향인 조지아 주로부터 ‘영구 공연 금지’ 처분을 받는다. 그러나 1977년 조지아 주는 레이 찰스에게 사과하고 그의 노래 ‘조지아 온 마이 마인드’를 주(州) 공식 노래로 정하기에 이른다. 레이 찰스는 미국 대중음악의 한 줄기 역사다. 그의 노래들, 그의 노래가 흐르는 풍경을 담아낸 이 영화는 그래서 ‘아래로부터 쓴 미국사’이기도 하다.

○ 제이미, 레이의 현신

제이미 폭스가 캐스팅 마지막 단계에서 거친 것은 레이 찰스의 오디션이었다. 레이처럼 세 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해 피아노 특기 장학생으로 대학을 마친 그는, 음악이든 비즈니스든 일의 완성도에 관한 한 ‘비타협적 완벽주의자’로 유명한 레이 앞에서 두 시간 동안 피아노를 연주한 끝에 합격판정을 받았다. 노래는 레이 찰스의 목소리에 립싱크를 했지만, 말할 때 쇳소리가 나는 레이 찰스의 목소리, 뒤뚱거리는 걸음걸이 등은 온전히 폭스가 재현했다.

다섯 살 때 눈앞에서 사고로 죽어간 동생에 대한 죄책감이나 약물중독이라는 극적 에피소드를 제외하고는 극 전개가 연대기적으로 평이한 이 영화에 강력한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은, 일거수일투족에 레이 찰스에 씌인 듯한 제이미 폭스의 연기와 무엇보다도 레이 찰스 자신이 부른 노래다.

테일러 핵포드 감독은 1987년 레이 찰스를 처음 만난 이후 15년간 그와 그의 주변 인물들을 만나고 자서전을 연구하는 등 기초 자료를 준비한 뒤 2002년에 촬영에 들어갔으며 영화는 지난해 10월 미국에서 개봉됐다.

2005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폭스는 ‘그가 없이는 영화 레이도 없었다’는 점 때문에 경쟁후보인 ‘에비에이터’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보다 비교 우위에 있다. 25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 가.

정은령 기자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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