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전망대]신연수/‘미국식-유럽식’ 진실과 오해

  • 입력 2004년 12월 13일 17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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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최근 프랑스에서 “한국 경제가 너무 미국식 이론에 강한 영향을 받고 있는 데 대해 약간은 걱정하고 있는 쪽”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정부의 경제정책이 다시 분배로 돌아갈까 걱정을 했다.

그런데 노 대통령이나 걱정하는 사람들이나 ‘미국식=경쟁 효율성 성장’, ‘유럽식=사회복지와 분배’로 너무 단순하게 나누는 것 같다. 과연 그렇게만 볼 수 있을까.

한국은 1990년대까지 주요 산업조직, ‘재벌’이라는 독특한 기업형태, 금융시스템, 종신고용제 등 대부분의 경제시스템에서 미국식도 유럽식도 아닌 일본식을 받아들였다.

한국이 본격적으로 미국식 시장경제를 도입한 것은 외환위기 이후다. 미국식의 도입은 불가피했고 한국 경제의 체질을 한 단계 높였다. 그러나 준비 없이 받아들임으로써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외환위기 후 기업의 주요 재원조달방식은 은행대출에서 주식시장으로 바뀌었다. 그 결과 경영은 더 투명해졌지만 기업들은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노출됐다.

적대적 M&A는 미국식 시장경제의 ‘꽃’이다. 상품과 노동은 물론 기업을 자유롭게 사고파는 것이야말로 시장경제의 진수라고 자유주의자들은 본다.

그러나 이 때문에 재계는 경영권을 방어하느라 투자를 못하겠다고 한다. 단기 성과 위주의 미국식 경영은 아직 대규모 투자와 고도성장이 이뤄져야 할 한국에 맞지 않으며 오너경영의 장점도 살려야 한다는 것이 재계의 주장이다. 실제로 외환위기 이후 투자가 감소한 데는 기업 환경의 급격한 변화가 크게 작용했다. ‘미국식=성장’이라는 등식이 언제 어디서나 성립하지는 않는 것이다.

일본식 종신고용이 해체된 노동시장도 마찬가지다. 종신고용 때는 별다른 사회보장이 필요 없었다. 하지만 평균수명은 늘어나는데 지금처럼 ‘사오정’ ‘오륙도’로 회사를 나오면 별 대책이 없다. 조기 퇴직자들은 단순 자영업으로 몰리고 공급과잉이 된 자영업은 더 장사가 안 되는 악순환이 나타난다. 이는 빈부 양극화와 사회 불안을 심화시키고 소비를 위축시킨다.

미국은 경쟁과 효율성을 중시하지만 실업수당이나 민간의 대규모 기부 등을 통해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와 실패자의 재기를 돕는 장치도 한국보다 잘돼 있다.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은 갖춰야 미국식 노동시장의 유연성도 늘릴 수 있다.

현재 한국 경제가 주춤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성장이냐 분배냐의 논란보다 일본식 시스템의 해체와 새로운 시스템의 도입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식과 유럽식을 단순하게 대립시켜서는 문제 해결이 더 어려워질 것 같다. 한국 경제의 기존 강점과 다른 나라의 장점을 보완해 조화시키면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신연수 경제부차장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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