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로 논술잡기]‘학벌사회’…대학간판 따지기가 당연

  • 입력 2004년 12월 10일 16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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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사회/김상봉 지음/446쪽·2만 원·한길사

한 번씩 그런 일이 있지 않은가. 아버지가 어느 날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와 앞에 앉으라 한 다음에 손을 잡고 “넌 꼭 서울대에 가야 해”라고 말한 기억 말이다.

자식이 커 가면서 부모의 꿈은 작아지는 법이어서 나중에는 이런 이야기를 못 들었을지 모르지만 어렸을 때 그런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다.

아버지들에게 서울대는 꿈이다. 그 꿈을 꾸는 이유가 자식이 최고의 학문을 익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안다. 최고의 학문이 아니라 최고의 권력을 보고 사람들은 서울대를 바란다.

공부 잘한 것이 잘못이냐고? 능력 있는 사람이 더 나은 대우를 받아야 사람들이 더 노력한다고? 그래서 서울대가 최고의 시험점수를 얻은 대학이기에 최고의 권력을 갖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그래 미국에도 명문대가 있다. 그들이 한국의 서울대처럼 단 하나의 대학이 상층권력의 50% 이상을 혼자 차지하던가. 아이비리그와 같은 8개 명문대들도 상층권력의 20% 정도를 차지할 뿐이다.

얼마나 배웠느냐보다 어디서 배웠느냐를 따지는 일에 우리는 참 익숙하다. 한국에서 대학을 서열화해서 따지는 일은 숨쉬는 일처럼 자연스럽다. 실력이 좋아도 대학 간판이 사람들의 통념에 비추어 좋지 않으면, 그는 어렵다.

이 책은 이런 문제를 파헤쳤다. 글쓴이는 국내 칸트 철학의 대가이다. 이 책은 학벌 사회가 왜 틀렸는지를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사색에서 길어 올린 철학 언어로 꼼꼼하게 증명하는데, 그 증명 과정에서 쓰인 언어가 참 아름답다. 현실 비판 서적이 갖기 쉬운 생경함은 없고, 풍부한 인문 서적을 읽는 맛은 넘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교육이 인간에게 어떠해야 하는지 가슴 깊은 곳에서 공감하는 논리를 확실히 얻게 된다. 그리고 공교육, 대학 평준화, 지역 할당제, 입사원서 학력란 폐지, 수능 폐지와 자격고사 도입과 같은 구체적인 대안에 대해서 알 수 있다.

이 책은 앞에서부터 찬찬히 읽어 나가면 어렵다. 차례를 보고 눈에 들어오는 제목을 찾아 건너뛰면서 책을 읽는 게 낫다. 정교한 논리가 돋보이는 책인 만큼 마음에 와 닿는 장이 있으면 그 부분을 몇 번 되풀이해서 읽으면서 그 논리 전개 과정을 체험해보기 바란다.

책을 덮고선 그 논리를 다른 사람에게 자꾸 말해보면 자신의 논리 구성 능력을 높일 수 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의 설명을 듣고서 고개를 끄덕거리는 정도에 따라 자기 실력을 가늠하면 거의 정확하다.

앎은 삶에서 검증될 때 온전해진다. 정해진 답이 없어야, 사람은 자유롭게 생각하기 시작한다. 객관식 시험 준비를 할 때 답은 이미 정해져 있고 앎은 삶에서 검증될 필요가 없었다. 그런 공부는 ‘타자적 지식과 소외된 진리에 노예적으로 굴종하는 것을 배우는’ 일이라고 글쓴이는 강하게 비판한다. 이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를 자기 삶에 비추어 생각해보라. 답을 정하는 사람은 우리 자신이다.

송승훈 경기 광동고 교사·‘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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