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나바시 요이치 칼럼]‘北韓불안정’ 시나리오

  • 입력 2004년 11월 25일 18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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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의 초상화가 일부 장소에서 철거됐다고 한다. ‘이변이 일어난 게 아닐까’ 의심해 보는 것이 상식이다.

한국 정부는 그렇게는 보지 않는다. 정동영(鄭東泳) 통일부 장관은 “북한 TV 등에 나오는 공공기관을 보면 초상화는 변함없이 걸려 있다”며 “이상한 징후를 파악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유럽의 한 유력국가 대사도 “북한의 불안정 시나리오에 대비한 준비를 시작했지만 어디까지나 시나리오상의 얘기일 뿐”이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북한분석 담당자들은 사태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 한 관계자는 “정권 기반이 흔들리기 시작한 최초의 징후일지도 모른다. 인플레 문제, 납치 문제, 후계자 문제가 그 배경에 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말했다.

가격통제 철폐로 촉발된 인플레와 배급제의 폐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북한 방문과 일본인 납치문제의 돌출, 후계자 지명을 순조롭게 하기 위해 이뤄진 잠재적 라이벌의 추방…. 그런 것들이 정권 기반, 그중에서도 노동당과 군부 내부에 혼란과 반발을 초래했다고 보는 것이다.

일본의 전직 외상은 “중국이 탈북한 군 간부와 은밀히 접촉한다는 정보가 있다. 중국은 북한의 불안정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라고 다소의 추측을 섞어 분석했다.

권력 중추는 몰라도 저변에서는 이변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탈북자 상황의 변화다. 탈북자 지원 비정부기구(NGO) 활동을 하는 문국한(文國韓)씨는 다음과 같은 변화를 들었다.

△예전엔 탈북자가 혼자 탈출을 결행하는 케이스가 많았는데 지금은 가족 전원이 탈출하는 사례가 늘었다.

△탈북자는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함경북도 사람이 많았는데 지금은 각지에서 흘러온다.

△최근엔 노동당 당원과 간부 출신의 탈북자가 늘고 있다.

일본의 북한 담당자는 한마디 더 붙였다. “보다 나은 생활과 기회를 찾아 한국에 가고 싶어 하는 탈북자가 늘고 있다. 한국이 잘산다는 정보가 상당한 정도로 침투했다는 증거다.”

미국의 북한인권법은 탈북을 더욱 촉진시킬 것이다. 문씨는 이 법의 내용을 아는 탈북자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국경지역 주민은 휴대전화를 통해 최신 정보를 입수하고 있다. 정보는 일반 대중에게도 흘러간다. “미국이 마침내 탈북자를 받아줄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문씨의 기대는 탈북자의 기대를 반영한다.

이제 북한의 불안정 시나리오에 대한 대응책을 가다듬어야 한다.

밑바닥에서는 혼란의 징후가 나타나지만 권력 중추를 뒤흔들 단계엔 이르지 못했다. 비등점과는 상당히 떨어져 있다. 하지만 식량 배급이 폐지되고, 궁핍해진 중간 간부층의 불만이 높아진다면 불안정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수 있다. 이런 현상이 북핵 문제의 향방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핵 문제의 해결을 막는 최대의 벽은 북한과 미국 양쪽에 있다. 북한은 핵 폐기라는 ‘전략적 결단’을, 미국은 북한과의 평화공존이라는 ‘전략적 결정’을 하지 못한다. 미국의 속내는 리비아 모델을 북한에도 적용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불안정 시나리오가 현실화하면 김 위원장의 상황 파악력과 결정력에 의문부호가 생길 수밖에 없다. 핵 문제 해결은 더 어려워진다.

군사 충돌, 핵 보유, 무정부라는 3대 악몽만으로도 머리가 아픈데 불안정 시나리오까지 가세한다면 모두가 불면상태에 빠질 것이다. 당분간 초상화의 행방에서 눈을 뗄 수 없다.

후나바시 요이치 일본 아사히신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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