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김형진]‘공공디자인’ 마음에 드시나요?

  • 입력 2004년 11월 19일 18시 07분


코멘트
공공디자인이란 대중이 함께하는 장소에서 구성원들간의 소통을 도와주며 공존하는 곳의 얼굴이자 지표의 역할도 한다. 실제 머릿속에 기억되는 중소형 자동차의 모습보다는 SF영화에서나 보았음직한, 외계비행선 같은 교통표지판의 픽토그램은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목적과 달리 운전자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

우리가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서 출근하고, 학교에 가며 또 여가시간에는 쇼핑을 한다. 이런 생활 속 경험들 가운데 디자인이라는 연금술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은 없다. 또한 우리의 시각이 화려하고 멋진 디자인에 너무 깊게 다가간 나머지 공공을 위한 디자인이 얼마나 우리의 삶을 도와주고 있는지, 또는 반대로 삶을 어지럽게 하는지 인식하지 못한 채 생활하고 있다.

공공디자인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한글의 잘못된 사용이다. 한글은 대한민국에서는 서로간의 소통을 도와주는 도구요, 세계적으로는 뛰어난 조형미와 독창적인 문화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올바르지 못한 쓰임새가 공공디자인과 더불어 이 나라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으니 창피한 노릇이다.

대표적인 예로 우리가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며 자신의 정체성을 대변케 하는 신분증을 살펴보자. 출력상의 해상도 문제로 뭉개져 버린 글자체는 그렇다 치고, 정보의 분류에 따른 글자간의 공간은 적당한지, 미적인 측면뿐 아니라 기능적 측면에서 쓰임에 맞는 서체를 선택해 사용하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꼭 필요한 정보만 보여주고 있는 것인지…. 대한민국 국민의 얼굴과 신분을 대변하는 신분증의 모습에 대해 다시 한번 관찰해 볼 필요가 있다.

또 지난 40여년 동안 변함없이 권위의 상징인 봉황무늬와 궁서체로만 이뤄진 초중고교의 상장은 어떠한가. 유신정권 시대에 생겨나기 시작한 이러한 그래픽 요소는 누가 보아도 그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주는 이의 권위보다는 받는 이의 가치와 추억을 더욱 존중하고 그들의 정서를 반영해 항상 간직하고 싶은 상장을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전문용어들이 숨쉴 틈 하나 없는 빽빽한 문장 속에 들어찬 의약품 사용설명서는 노인이나 어린이는 물론이고, 지식인도 알아보기 힘들게 돼 있다. 언제나 주의를 요하고, 그 위험도를 얼마나 직관적으로 빠르게 인식하느냐가 관건인 공사장에서 적절한 공간과 여백을 둬야 판독이 수월한 한글의 속성을 무시한 채 두꺼운 원색의 한글만을 고집하는 경고판들은 오히려 위험을 초래하는 요소일지도 모른다.

어릴 적 국어책에서 배우던 한글의 정확하고 미려한 이미지, 미술책에서 배우던 색상 대비와 조형성에 관한 내용은 우리 공공디자인과는 다른 이야기란 말인가. 앞에서 제시한 예 말고도 우리 삶과 밀접한, 그러기에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 줄 수 있는 공공디자인에 대해 다시 한번 깊게 관찰하고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문득 오래전에 부르던 노래가 생각난다.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이 노랫말처럼 우리의 얼굴을 목적과 다르게 그저 무심코 그려 왔던 것은 아닐까. 생활 속에서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소통이 가능하며 문화를 자신 있게 드러낼 수 있는 똘똘하고 잘생긴 우리의 얼굴을 만들어 나갈 수는 없는 것일까.

김형진 윤디자인연구소 폰트디자이너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