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임채청 칼럼]‘취한 권력’은 쉬 깨지 않는다

  • 입력 2004년 10월 26일 18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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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이 몰아붙이고 있는 ‘신문법안’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다 보면 주어진 힘을 주체하지 못하는 후진적 권력의 타성을 절로 되새기게 된다. 이울 때가 정해져 있는 권세에 탐닉해 허망한 욕심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끝없는 자기부정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숙연한 마음으로 오늘날 언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생각하게 된다.

한때는 이른바 ‘언론개혁’ 진영에 논리를 제공하기도 했던 법학자 A씨의 얘기가 신문법안의 반(反)역사성과 추진세력의 근시안을 잘 일깨워준다. 법률적 설명은 생략하고(본보 25일자 A5면 참조) 요지만 추리면 “신문법안은 5공(共) 시절의 대표적인 악법이었던 언론기본법을 그대로 연상케 한다”는 것이었다.

▼술이 아니라 권력에 취했다▼

A씨가 전한 법조인 B씨의 근황이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언론기본법 제정에 깊이 간여한 B씨는 지금도 몹시 괴로워한다고 했다. 그 법에 규정된 ‘언론의 공적책임’이라는 조항이 훗날 ‘보도지침’과 같은 야만적인 언론탄압에 원용된 것을 두고두고 후회한다는 것이었다. 절제심이 부족한 권력이란 원래 그런 것이므로 법률의 입안은 아주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탓이리라.

취재팀은 B씨의 얘기도 들어봤다. 그는 단호했다.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으면서 신문법안은 헌법 위반 덩어리라고 단언했다. 공공성 공익성 공정성과 같은 미사여구로 포장한 법일수록 감춰진 권력의 의도가 많다고 했다. 윤리적 사항까지 규제하려는 법일수록 탈법적인 남용의 위험이 크다고도 했다.

그의 경고가 아니더라도 요즘 집권세력의 행태는 비판언론에 비상한 각오를 다지게 한다. 이미 익숙해진, 비판언론에 대한 원색적이고 집단적인 적개심 표출 때문만은 아니다.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이후 보여준 그들의 무모함이 더욱 두렵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헌법기관마저 인정하려 들지 않는 유아적인 공격성에 숨이 막힌다.

왜 그리 됐을까. 술에 취해서도 아니고 계절에 취해서도 아닐 것이다. 여권 수뇌부에 감당하지 못할 실수를 할 정도로 술에 취하고 계절에 취할 인사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 그렇다면 그들은 권력에 취했다고밖에 볼 수가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결정으로만 말하는’ 헌법재판관들에게 공개토론을 제안하는 여권 인사들의 심리나 그들을 방관하는 여권 수뇌부의 정서를 납득할 수가 없다.

취객이나 ‘취한 권력’이나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조차 헛갈리는 수도 있다. 현 집권세력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이 가을밤에 정신을 가다듬고 한번쯤 자신이 걸어온 길을 더듬어보면 존재 의의를 망각한 현재의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랄지도 모를 일이다.

현 집권세력이야말로 재야시절 누구보다 권력의 언론통제를 혐오하고 비판언론을 목말라했다. 민주화항쟁의 현장에서 동아일보 기자를 유독 반겼던 사람들의 기억도 생생하다. 처지가 달라졌다고 해서 그런 과거를 지우려 들거나 당장의 목적 달성을 위해 과거를 윤색하려 드는 것은 자기모순이라는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히 해두고 싶다.

▼변한 것은 현 집권세력이다▼

취객과 달리 취한 권력은 품 안에서 권세가 떠난 것을 알 때까지는 쉬 깨어나지 않는다. 정치판을 오랫동안 들여다 본 원로언론인 C씨의 말처럼 취한 권력의 ‘혈중알코올농도’를 민심으로 가늠할 수 있다면, 현 집권세력의 ‘취기’는 꽤 심각하다. C씨는 그럴수록 언론이 깨어 있어야 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변하지 않은 것은 당대 권력의 속성이고, 변한 것은 현 집권세력이다. 이를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변한 것은 정권이고, 변하지 않은 것은 동아일보가 있어야 할 자리라고. 그 자리는 언제나 권력의 맞은편임을 독자들은 안다. 동아일보는 3년 후에도 8년 후에도 한결같을 것임을 다짐한다.

임채청 편집국 부국장 cc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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