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칼럼]‘개혁독재’ 철옹성 쌓기?

  • 입력 2004년 10월 18일 18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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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렬 조순형씨가 자신들의 패망을 제대로 예견했다면 대통령 탄핵안에 끝까지 승부수를 던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로부터 7개월이 흐른 지금, 노무현 정권은 국가보안법 폐지와 언론관계법 사립학교법 과거사규명법 제정(制定) 개정(改正)의 주사위를 던졌다.

▼民心과 거리 먼 ‘4대 입법’▼

이 모험은 지배세력 교체를 매듭짓고 열린우리당과 그 우군(友軍) 권력을 끝없는 탄탄대로에 연착륙시킬 ‘역사적 카드’가 될까. 그렇게 된다면 이 나라는 자유민주주의를 완성하고, 자주(自主) 안보를 앞당기며, 소득 2만달러의 풍요를 온 국민이 고루 누리고, 동북아 중심국가이자 미국과 대등한 나라가 될까.

대한민국은 갈림길에 섰다. 여당 시간표대로라면 앞으로 한 달 남짓이 정치적 이념적 내전(內戰)의 중대한 고비가 될 수밖에 없다.

4개 법률안의 ‘숨은 그림’을 다 찾아내지 않더라도 보안법, 언론, 사학(私學), 과거사 문제가 나라의 미래를 위한 ‘4대 개혁과제’라는 강변은 다수 국민의 생각과 거리가 멀다. 경제 민생(民生) 문제 해결이 국정 최우선 과제라는 국민이 90%다. 보안법 폐지엔 국민의 80%가 반대한다.

이 정권 아래서 경제 사회적 삶의 조건과 질이 악화되는 데 분노하는 국민이 갈수록 늘고 있다. 발등의 불부터 꺼 달라는 호소를 넘어 대통령과 정부 여당을 향한 비판이 욕설과 저주로 번지고 있다.

경제 민생의 숙제는 더 미룰 시간도 없다. 투자와 소비 회생, 일자리 만들기, 서민과 중산층의 생업(生業)위기 해소, 신용불량자의 경제활동 회복, 비정규직 노동차별과 빈부 격차 완화, 가정(家庭) 붕괴와 노인문제 대책, 국민연금의 근본적 수술….

또한 온 나라가 갈등의 용광로처럼 돼 버렸고 풀어야 할 현안은 쌓여만 간다. 그런데도 정부 여당은 “경제 민생 최우선”이라고 말만 앞세운다. 대통령은 “내 임기 중엔 경제 걱정 없다”고 하다가 이젠 “국내에서 경쟁력이 떨어져 죽는 것보다 해외로 나가는 게 낫다”고 한다. 경제를 직접 챙긴다는 이해찬 국무총리는 “우리 경제가 2007, 2008년에는 지금보다 훨씬 좋아질 것”이라고 한다. 이 정도면 대범하다고 할 만하다.

대통령과 총리가 이러고 있는 사이, 한국의 국가경쟁력이 추락했다는 해외 전문기관의 조사보고서가 나왔다. 그러자 이헌재 경제부총리,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 국정홍보처 등은 “잘못된 조사”라며 발끈하거나 기업인들에게 뒤늦은 홍보서한 보내기로 대응한다. 대통령과 총리는 그렇다 치고, 경제부총리조차도 우리 경제의 장애물들을 정권이 만들어 왔음을 정말 모르고 있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교육위기는 또 어떤가. 모든 학생에게 평등의 희망을 주겠다며 사실은 세계적 무한경쟁의 낙오자를 양산하는 ‘경쟁 없는 교육’의 미신이 판을 친다. 세계 100등 안에 들어가는 대학 하나 없는 현실 속에서 어떤 희한한 ‘참교육’ 집단은 나라의 미래인 아이들을 ‘누워서 크는 콩나물’로 만드는 데 막강한 위력을 발휘한다. 이렇게 길러지는 후세들이 언제까지나 ‘경쟁의 도피자’로 보호받을 가능성은 없으니 결국은 이들이 피해자다.

그런데도 교육문제에만 국한해서도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사학법 개정을 국가적 4대 개혁과제 중 하나라고 우긴다. 공교육 붕괴의 가장 큰 책임이 사학재단에 있기라도 하는 양, 사학 운영권을 재단에서 빼앗겠다는 얘기다. 그 교육권력이 누구의 손에 들어갈지는 짐작할 만하다.

▼정권 이익, 국민에게도 이로울까▼

보안법 폐지와 과거사법 제정은 나라의 중심추를 우(右)에서 좌(左)로 확실하게 이동시키는 수단으로 유용할 것이다. 언론법은 비판 무력화(無力化)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국민의 눈과 귀를 더욱 어둡게 할 것이다. 대기업은 공정거래법이 잘 다스려 줄 것이다. 이 법의 개정 시점도 내달이다.

대통령은 “부마(釜馬)민주항쟁이 유신독재의 철옹성을 무너뜨렸다”고 했다. 지금은 개혁의 가면(假面) 뒤에서 ‘코드독재’의 철옹성 쌓기가 진행되고 있지 않은가. 정권 이익과 국민 이익이 동행할 것인가.

배인준 수석논설위원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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